떼죽음으로 홍역 치른 남해안 굴… 이번엔 ‘종자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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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종자를 생산하는 거제 라온팜에서 엄성 대표가 어린 굴이 부착된 연줄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곳은 패류 종자 생산 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작년도 참 안됐다고 했는데, 올핸 더 안 좋네요.” 경남 통영과 거제를 잇는 거제대교 밑 바닷가. 남해안 굴 양식장에 종자를 공급하고 있는 라온팜 엄성 대표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배양 기술을 이전 받아 국내 최대 패류종자 생산시설을 갖춘 지 올해로 20년째. 그는 매년 부침이 있었지만, 올해만큼 힘에 부친 적은 없었다고 했다.

3년 전부터 원인 모를 이상 징후
올해 종자 생산량 평년 40% 그쳐
채묘철 앞두고 종자 없어 발 동동
10월 출하 작업부터 차질 예상

경남에 있는 민간 패류 종자 보급 시설은 모두 20여 곳. 라온팜에선 연평균 30만 연의 굴 종자를 생산해 왔다. 1연에는 2000개 안팎의 어린 굴이 붙어 있는데, 잘될 땐 40만 연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는 20만 연도 버겁다.

엄 대표는 “그나마 나은 게 이 정도다. 대부분은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며 “3년 전부터 이상 징후가 감지됐지만, 아직도 원인을 모른다. 그래서 더 갑갑하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난데없는 집단 폐사로 홍역을 치렀던 경남 남해안 굴 양식업계가 이번엔 최악의 ‘종자난’에 직면했다. 인공종자 생산량이 3년 내리 곤두박질치면서 상당수 어민이 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25일 남해안 굴 양식업계에 따르면 올해 굴 인공종자 생산량이 예년의 40%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업계가 필요로 하는 종자는 한해 1000만 연 정도다.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종자는 제한적이라, 절반 정도는 육상 시설에서 인공 배양한 종자로 충당해 왔다. 그런데 2020년을 전후해 인공종자 생산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굴수협 관계자는 “지난해 평소의 70%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올해 아예 반 토막 났다”면서 “내달 채묘를 앞두고 남해안 일대 어장이 비상”이라고 전했다.

채묘는 굴 종자를 가리비나 굴 껍데기에 부착시키는 작업이다. 농사로 치면 밭에 씨를 뿌리는 과정이다. 업계에선 6~8월 사이 채묘한 어린 굴로 이듬해 수확할 물량을 확보한다.

어민들은 이번 종자난의 주요인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고수온과 긴 가뭄을 지목한다. 엄성 대표는 “(수온이)저점에서 고점에 닿는 시간은 짧아졌고, 고점이 유지되는 기간은 너무 길어졌다.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증식됐을 공산이 크다”고 했다. 여기에 강수량 감소로 바닷물 염도가 높아져 굴 생장에 지장을 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수과원도 원인 규명에 나섰지만, 아직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해황 발생 등으로 굴의 생리적인 변화와 산란에 참여하는 어미 굴의 부족 등 굴 산란량 감소를 일으키는 복합적인 원인’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당장 10월 출하 작업부터 생산 차질이 예상되는 가운데, 어민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굴수협 지홍태 조합장은 “자연종자의 40%를 책임져 온 가덕도 채묘장이 수상워크웨이사업 등으로 수년 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대로는 씨앗이 없어 농사를 못 짓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앞선 떼죽음 피해로 가뜩이나 힘겨운 마당에 어민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일단 원인을 찾는 게 급선무이고, 이를 토대로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다양한 육종 연구를 통해 기후 변화를 극복할 우량종자와 그에 맞는 먹이생물을 개발, 보급할 전담 기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작년 말 경남 남해안에선 이상 조류로 인한 양식 굴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 당시 400어가, 577ha가 초토화됐다. 이는 경남도 내 굴 양식장(3474ha)의 17%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피해액도 역대 최고인 103억 8400만 원 상당으로 집계됐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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