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4번이나 바뀌었는데… ‘동물원 없는 부산’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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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달을 맞아 부산시에서 가장 붐벼야 하지만 먼지와 잡초만이 무성한 곳이 있다. 부산시와 향토기업 삼정기업이 500억 원 민사 소송을 벌이며 2년째 문을 걸어 잠근 부산 유일의 동물원 ‘삼정더파크’가 바로 그곳이다.

2014년 표류하던 동물원 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부산시가 내건 ‘의무 매수’ 약속은 8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동물원 측은 휴장 2년 동안 동물 사료비와 운영비에만 57억 원을 지불했다. 2030월드엑스포를 유치하겠다며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기에 앞서 방치된 관광자원부터 되살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물원 ‘삼정더파크’ 2년째 폐쇄
시·삼정기업, 500억 민사 소송
시, 매수확약서 써 주고 약속 어겨
최근 다른 핑계로 대출 승계 거부경실련 “극단적 보신주의 행정 결과”
월드엑스포 유치 앞서 복원 여론

■“각서 쓸 땐 언제고, 나몰라라”

허남식 전 부산시장은 시행사의 부도로 표류하던 더파크 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삼정기업에 도움을 요청했다. 부산시는 ‘동물원을 준공만 시켜주면 훗날 의무 인수하겠다’는 ‘매수확약서’를 썼다. 시공사였던 삼정기업은 500억 원을 대출받아 2014년 동물원을 준공했다.

2017년 약속했던 3년 운영을 마무리하고 삼정기업은 부산시에 ‘약속대로 대출 500억 원을 부산시가 승계하라’고 매수확약서를 들이밀었다. 부산시는 이때 ‘당장 대출 승계를 못하니 3년만 더 운영해 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6년간의 동물원 운영을 마친 삼정기업은 2020년 ‘더는 운영 못하겠다’며 재차 확약서 이행을 시에 요청했다. 그러자 부산시는 ‘동물원 토지 중 1필지에 정리되지 않은 지분이 있다’는 것을 빌미로 대출 승계를 거부했다. 오거돈 전 시장 때 일이다.

삼정기업은 ‘일부 토지에 지분 정리가 필요하다는 건 6년 전 확약서 작성 당시에도 알고 있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이번에는 시는 ‘동물원을 인수할 기업을 구해주면 어떻겠느냐’고 자세를 바꿨다. 물론, 오 전 시장의 갑작스러운 성추문 사퇴로 시는 인수 기업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삼정기업은 그해 어린이날을 앞둔 4월 29일 동물원을 폐업했다. 그리고 2개월 뒤인 6월 부산시를 상대로 500억 원 민사 소송에 돌입했다. 그렇게 부산은 다시 동물원이 없는 인구 350만 대도시가 됐다.

그 뒤 변성완 전 시장 대행, 박형준 시장 등 수장이 2명이나 바뀌었지만 부산시는 여전히 대출 승계를 거부하고 있다. 변 전 대행 때 부산시는 동물원 이름 변경을 트집잡았고, 현재 시는 다시 사권 문제로 인수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삼정기업 측은 “시청만 믿고 사기업이 대표 명의로 연대보증까지 서가며 공사를 끝냈다. 동물원 준공의 치적과 공은 전임 시장과 당시 시청 담당자가 챙기고, 새로 온 직원들은 우린 모르는 일이니 인수 못 한다고 버티고 있다”고 분개했다.



■내년 어린이날 개장도 요원

2021년 소송 1심이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동물원 개장이 더 요원해졌다. 1심 재판부는 ‘매수확약서 말고 정식 매매 계약부터 체결하라’고 판결했다.어느 쪽의 손도 들지 않고 다른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부산시청의 입장은 2년전 소송 초기와 달라진 것이 없다. 되레 부산시청은 “삼정기업이 항소를 제기하는 바람에 재개장이 자꾸 미뤄지고 있다”며 “동물원 부지 중 사권 논란이 있는 1필지가 있어 지자체는 이를 인수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시는 2020년 5월 더파크 폐장 직후 가정의달을 맞아 시민 비난이 속출하자 동물원 정상화를 위해 부랴부랴 민간협의체를 꾸렸다. 시민의 상실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부지 확장 등 정상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그 중 2년이 지난 지금 실현된 안건은 전무하다. 꾸려졌던 부산시 민관 협의체는 사람들의 비난이 잦아들자 슬그머니 활동을 끝냈다.

부산시와 삼정기업의 민사소송 항소심은 내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어느 쪽이 승소하든 그 이후에도 동물원 개장은 요원하다.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터라 대법원 상고가 불보듯 뻔하다. 이 말은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내년 어린이날에도 동물원 개장은 어렵다는 의미다.

항소심을 선고를 앞두고 부산시가 고압적인 자세를 탈피해 동물원 재개장을 위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결국, 부산시가 다급할 땐 각서까지 써주며 약속했다가,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뒷수습을 외면한 탓에 불거진 사달이기 때문이다.

부산경실련 도한영 사무국장은 동물원 사태에 대해 ‘부산시에 전문가가 없다’고 비판했다. 잦은 인사로 특정 분야를 책임질 관료도 없고, 본인이 담당자일 때만 조용히 넘어가면 된다는 ‘극단적 보신주의’ 행정이 빚은 사태라는 이야기다. 도 국장은 “행정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면 어느 누가 시를 신뢰하고 협약을 맺겠느냐”며 “수년을 발뺌만 하다 동물원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 시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아울러 도 국장은 “삼정기업 역시도 초기 공사비와 관람료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부산시, 부산시의회와 각을 세우고 비난을 자초한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 달라진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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