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 표적 됐던 부산 노동운동… 상처 극복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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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책이다. 그러나 슬프고 아픈 내용이 많다고 했다. 인도사 전공자인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가 (앨피)를 냈다. 우리 당대 부산 현대사의 한 부문을 직시한 보기 드문 책이다. 유신 말기부터 IMF 위기 직전까지 20여 년을 다루고 있다.

이광수 부산외대 인도사 교수
‘부산지역 노동운동사’ 펴내
광주·시대·친구… 마음의 빚
운동사 20년 기록으로 갚아
유신 말기부터 IMF 위기까지
굴곡의 부산 현대사 복원

-인도사 전공자가 어떻게 이런 책을 냈나.

“저는 광주 출신으로 ‘80년 광주’의 아픔이 더 컸다. 대학 입학 후 시대에 관심을 가지다가 1984~90년 인도 유학을 가버렸다. 그런데 친한 친구는 운동을 하다가 감방에 들어갔다. 광주·시대·친구에 대한 마음의 빚이 항상 있었다. 세상을 바꾸려면 ‘정치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1998년부터 부산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에 참여했다. 그 참여는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그때부터 30여 년간 부산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이들을 만나면서 반드시 기록해야 할 부산지역 노동운동사와 만났다.” 책은 ‘유신 말기에서 87 노동자대투쟁 전까지’ ‘87 노동자대투쟁’ ‘전노협과 부산노련’ ‘민주노총의 건설’, 4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부산 노동운동사는 어땠나.

“무엇보다 슬프고 아팠다. 한국의 현대 노동운동사는 유럽과 달리 정치 세력화하지 못한 좌절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노동세력 대 자본/국가의 최전선이 부산에서 형성되면서 부산의 노동운동은 철저하게 탄압을 받았다. 서울 인천 경기, 창원과 울산은 대기업노조와 운동세력들이 강해서 자본과 국가가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던 곳이다. 그러나 ‘만만한’ 부산은 탄압의 표적이 됐고 크게 궤멸했다. 그 궤멸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30여 명의 구술을 받았는데 7~8명이 자신의 구술을 빼달라고 했다. 상처가 그만큼 큰 곳이 부산이었다.”

부산과 달리 서울과 인천 그리고 경기, 창원과 울산, 심지어 광주 전북 경북 대전의 경우, 각 지역 노동운동사가 아주 잘 정리돼 있다. 마산과 창원의 경우, 소설가가 쓴 800쪽의 이라는 지역 노동운동에 대한 문학적 역사서가 나와 있다.

-부산이 과연 그러했나.

“각 부문은 부산 현대사와 맥을 같이한다. 부산 인구는 1990년대 400만을 내다보다가 330만 대로 추락했다. 부산의 많은 부분이 추락해왔다. 수도권, 창원과 울산의 경우, 노동운동을 그만두면 진출할 수 있는, 이를테면 정치판 같은 ‘다른 장’이 있는데 부산은 그 장이 협소해 상실감 속에서 과거를 애써 묻는 식이 되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뜨겁지 않았던가.

“부산 역시 그랬다. 1987년은 분명한 전기였다. 그전에는 ‘실-반실 논쟁’(1985~86)의 예처럼 노동운동을 ‘학출(대학 출신)’ 운동가들이 주도했다면 1987년 이후에는 노동자들도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학출운동가와 선진노동자 등이 만든 조직이 1987년 부노협(부산노동자협의회)과, 1989년 부노련(부산노동자연합), 노단협(부산노동단체협의회)이었고, 노동조합간의 연대체로 처음 만들어진 것이 1989년 부산노련(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이었다. 부산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고무공장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전국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가장 규모가 커서 표적이 된 ‘한진중공업’과 ‘대우정밀’, 2곳은 정말 심한 탄압을 받았다. 방산업체라며 손발을 묶었던 곳이 대우정밀이고, ‘열사’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와 ‘투사’ 김진숙의 희생이 따랐던 곳이 한진중이다.”

-또 다른 전기는 없었나.

“1980년대 말까지는 변혁을 지향하는 계급으로서 노동자 성격이 강했고, 1990년대 초반부터는 블루·화이트칼라가 섞이면서 노동자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변했다. 1989년 사회주의 몰락이 큰 전기였다. 이후 한국 노동운동 주체가 변혁운동에서 멀어졌다. 노동자 출신 룰라를 대통령으로 배출한 브라질과 달리 한국 노동운동은 기업별노조를 유지하면서 산업별노조로 나아가지 못했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 특히 부산은 진보정당 설립의 역사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부산노련을 거쳐 내셔널센터인 민주노총 부양지부를 건설하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부산은 노동운동 궤멸의 과정 속에서 1990년 김영삼의 3당 합당 이후 정치적 보수화로 선회했다. 하지만 역사가 뭔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성찰하자는 것 아닌가”라며 “수많은 노동자들이 희생적으로 걸어온 길을 자랑스럽게 복원해내면서, 그 길 위에서 주고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내일을 또다시 전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사진=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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