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이곳이 카페인지 천상의 궁전인지!”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유럽 인문학 기행-헝가리] 뉴욕 카페


1894년 10월 23일의 일이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에르제벳 코루트(엘리자베트 거리)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렸다. 다들 기대감에 부풀어 흥분한 표정이었다. 이들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새로운 건물 개장식 장소였다. 미국에 본사를 둔 뉴욕보험회사가 헝가리 지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뉴욕 궁전’이었다.


뉴욕 카페 내부. 뉴욕 카페 내부.

뉴욕 궁전 개장식에 사람이 몰린 것은 건물이 정말 아름답다고 완공 이전부터 소문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헝가리 최고라고 평가를 받던 건축가 알라요슈 하우즈만, 플로리스 코르브, 칼람 기르글이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건물이었다. 정면 지붕에는 뉴욕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다. 거리를 바라보는 정면에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 괴물인 사티로스가 새겨졌다.

부다페스트 시민의 눈길을 특히 끈 것은 1층의 커피하우스였다. 이름은 헝가리어로 뉴욕 카베하즈, 즉 ‘뉴욕 카페’였다. 당시 부다페스트에서는 커피하우스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부다페스트에만 500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있을 정도였다.

뉴욕 카페는 문을 열기 전부터 부다페스트에서 최고 수준의 커피하우스라고 소문이 났다. 긴가민가하며 뉴욕 카페에 들어간 사람들은 소문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조각품과 샹들리에, 원형 기둥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다. 최고급 극장이나 초대형 성당을 연상케 했다. 당시 부다페스트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꾸민 장식품이었다. 사람들은 웅장한 카페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는 것인지, 흘리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한 시인은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찬사를 터뜨렸다.

“이곳이 카페인지 천상의 궁전인지!”



뉴욕 궁전 전경. 뉴욕 궁전 전경.

■다뉴브 강에 던진 열쇠

“부다페스트에 이렇게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카페가 생기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야!”

“이곳이 1년 365일 내내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첫날 몰린 사람 중에는 당대의 소설가, 시인, 화가 등 문화예술인이 많았다. 이들은 뉴욕 궁전과 뉴욕 카페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다들 앞으로 매일 이곳을 찾아야겠다고 입을 모았다.

모두가 화려하고 찬란한 뉴욕 카페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한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구의 계산대로 달려갔다. 그는 계산대의 직원은 쳐다보지도 않고 계산대 뒤에 걸려 있던 열쇠를 냉큼 낚아챘다. 직원은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뉴욕 카페 내부. 뉴욕 카페 내부.

젊은이는 극작가인 레렝 몰나르였다. 그는 뉴욕 카페 한가운데의 테이블 위로 올라가 열쇠를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뉴욕 카페가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맞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몰나르가 열쇠를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몰나르는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뉴욕 카페 열쇠가 있습니다. 지금 다뉴브 강으로 달려가서 열쇠를 던져 버릴 겁니다. 앞으로 주인은 카페 문을 잠글 수 없겠지요? 모두 제 뒤를 따라와서 열쇠를 버리는 장면의 증인이 돼 주시지 않겠습니까?”

몰나르의 말에 다시 큰 박수와 함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카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카페의 손님들은 일이 재미있게 돼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를 따라갔다.

“잘 보십시오. 열쇠를 강물로 던집니다. 우리의 영원한 평온을 위해!”

몰나르는 주저하지 않고 열쇠를 강으로 던져버렸다. 뒤따라 나온 사람들은 다시 환호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뉴욕 카페의 주인 산도르 스토이어도 그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몰나르의 행동에 화를 내기는커녕 가장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가장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은 뉴욕 카페의 성공과 영원한 번영을 자신하고 있었다.

몰나르가 열쇠를 던져버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라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당시 개장식에는 부다페스트의 유명한 귀족들과 저명한 문학예술인이 몰렸습니다. 당시 몰나르는 16세에 불과했습니다. 신출내기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었고, 언론인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명 인사가 총집결하는 개장식에 그런 풋내기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여러 사람의 증언과 자료를 종합해 보면 열쇠를 던져버린 사건은 실제로 있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다만 그 연도가 1894년은 아니라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그 시기를 1927년이라고 본다. 당시 몰나르는 49세였고, 뉴욕 궁전은 수리 중이었다.


■호텔로 다시 태어나다

뉴욕 궁전은 1920~30년대에도 인기를 이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40년대 옛 소련 지배 시기에는 ‘뉴욕’이라는 이름 때문에 문을 닫았다. 나중에 옛 소련의 꼭두각시 공산 정권 시절에는 국가 재산으로 귀속돼 스포츠용품 창고로 사용됐다.

뉴욕 궁전이 되살아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이탈리아의 고급호텔 체인인 보스콜로가 2001년 건물을 매입해 호텔로 리모델링했다. 공사는 5년이나 걸려 끝났다. 뉴욕 카페도 옛 분위기를 고스란히 되살린 채 재개장했다.

뉴욕 카페는 오늘날에는 부다페스트 여행의 명소로서 높은 인기를 누린다. 이곳에는 현지인뿐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맛있는 빵,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이라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을 보려는 것이다.


실제 뉴욕 카페는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말문이 막힐 정도다. 둘러보는 모든 곳에는 대리석 기둥이 서 있다. 눈부신 샹들리에는 아름다운 부조 조각과 벽화로 장식된 천정에 매달려 있다. 아주 전략적으로 배치된 여러 거울은 실내 분위기를 아주 널찍하게 보이게 만든다. 가장 인상적인 장식은 아래층 식당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있는 바로크양식 아치다. 비비 꼬인 대리석 칼럼이 아치를 받치고 있어 웅장하면서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