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태종사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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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물물(頭頭物物) 처처불상(處處佛像)’이라 했다. 물건 하나하나, 세상 모든 곳에 부처가 있다는 이야기다. 우주에 삼라만상이 담겨 있지만, 꽃 한 송이도 우주를 속에 품고 있는 법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화장세계(華藏世界)다. 그런 화장세계를 연상케 하는 꽃이 불두화다. 불두화는 수백 개의 작은 꽃들이 동그랗게 모인 군집화다. 수많은 꽃들이 하나의 꽃을 만들고 동시에 그 하나의 꽃이 수많은 꽃을 품었다.

불두화(佛頭花)라는 이름은 꽃 모양이 석가모니 부처의 곱슬한 머리카락인 나발을 닮아 붙여졌다. 피는 시기가 사월초파일 즈음이라 ‘부처의 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거기다 불두화의 꽃말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이래저래 불교와 잘 어울리는 꽃인지라, 불두화로 화단을 꾸며 놓은 절이 많다.

이 불두화의 겉모습이 수국을 닮았다. 수국도 미세한 꽃들이 무리를 이루어 꽃 모둠을 형성해 그 탐스러움이 불두화와 비슷하다. 성급히 보면 둘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수국은 범의귀과, 불두화는 인동과 식물이다. 수국의 잎은 깻잎처럼 둥글고 불두화 잎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개화 시기도 수국이 불두화보다 한 달가량 늦다. 무엇보다 수국은 불두화보다 훨씬 화려하고, 꽃말도 냉담, 변덕 등이라 불교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부산 영도에 있는 절 태종사는 수국으로 유명하다. 해마다 초여름이면 절 안팎이 수국으로 물든다. 2006년부터는 수국이 만발할 무렵 축제가 열려 전국에서 감상객이 몰렸다. 태종사의 수국은 이 절의 조실로 있는 도성 스님이 수십 년간 가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가 70년의 도성 스님은 경남 합천 해인사 주지를 지낸 조계종 스님이지만, 동시에 스리랑카, 태국 등에도 따로 승적을 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런 고승이 수국과 불두화를 구분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깊은 뜻이 따로 있을 것이다. 불두화와 수국을 경계 지음 또한 버릴 일, 불두화에서 부처를 봤다면 수국에서도 부처를 찾으라, 그리 짐작해 본다. 수국으로 인해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면 그 또한 큰 공덕일 테다.

태종사 수국이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크게 훼손됐다고 한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때문에 축제를 못 열었는데, 이번엔 많은 수가 말라 죽어 축제를 취소했다니 안타깝다. 수국이 다시금 태종사를 장엄토록 얼른 많은 비가 내리길 고대한다. 5일 살짝 내린 이런 비로는 턱도 없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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