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산상의에 해운기업은 '비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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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해양산업국장·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컨테이너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1, 3, 5위의 글로벌 해운기업인 MSC, CMA CGM, 하파그로이드는 본사를 소속 국가의 수도가 아니라 지방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스위스 국적의 MSC는 제2 도시인 제네바, 프랑스의 CMA CGM은 파리가 아니라 남부의 마르세유, 독일의 하파그로이드는 항만도시인 함부르크에 각각 본사를 두고 있다. 굳이 수도에 본사를 두지 않아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방증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최대 항만도시인 ‘부산’에, 우리나라 최대 선사인 ‘HMM’(세계 8위)이 본사를 설치한다면 어떨까. HMM은 옛 현대상선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금은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최대 주주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부산 본사이고, 산업은행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본사의 부산 이전이 임박했다는 점에서 HMM 본사를 부산으로 가져오는 것은 정부 결단에 따라 어렵지 않을 수 있다.

HMM의 ‘부산 본사’ 가능성 타진 앞서
해운에 대한 부산 경제계 인식 바꿔야
부산상의 의원 134명 중 해운기업 전무
해운-부산상의 소통 위한 좌담회 제안

하지만 서울에 잘 있는 기업을 부산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정부 독려만으론 부족하다. 줄탁동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안팎으로 쪼아 껍질을 깨뜨려야 한다. 문제는 껍질 바깥(정부)이 아니라 내부(부산 경제계)에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다. 부산 경제계에 대한 해운기업의 불신이 적지 않다. 불신이 깊으면 본사를 억지로 유치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파산한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과 자산을 인수한 SM상선이 2018년 전격적으로 부산에 사옥을 마련해 본사를 옮기고 당시 김칠봉 사장이 부산 언론사 CEO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등 지역 스킨십에 열의를 보였지만,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은 해운업계에 꽤 알려진 일화다. ‘개방 도시, 부산’은 우리만의 수사일 수 있다는 얘기다.

SM상선은 지금도 본사를 부산에 두고 있다. 하지만 핵심 기능은 서울로 다 가져갔다. 서울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부산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SM상선의 ‘부산 효과’에 대한 불만은 HMM의 본사 이전을 거부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산은 과연 ‘열린’ 도시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산 경제계가 개방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들만의 동네 리그’를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해운기업에 대한 부산상의의 태도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부산상의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는 임·의원 134명(명예의원 10명 포함) 중 해운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해운기업이 전체 등록 기업 5797개사 중 1.3%인 73개사에 달하고, 해양산업 중에서도 조선기자재 다음으로 회원이 많지만, 정작 회비를 내는 ‘진성 회원’으로 활동하기를 꺼린다는 것은 무엇을 웅변할까. 전국 73곳의 상공회의소 중에서 해양수산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부산상의가 유일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속에서도 해운기업을 찾기는 어렵다.

해운이 부산 경제계, 특히 부산상의에서 늘 이방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상의 회장을 역임한 동명목재 강석진, 국제상사 양정모, 동아석유 신중달 회장은 각각 동성해운, 국제상선, 고려해운을 창업할 정도로 해운을 중시했다. 또 흥아해운은 1961년 부산 중앙동에서 한·일 정기선 서비스로 창업했고, 한때 외항 선두주자로 이름을 날린 협성해운은 1950년 부산을 모태로 성장했다. 한진해운 전신인 대한해운공사도 1950년 부산에서 시작했다.

한국해운협회에 따르면 전국 163개 선사 중 51개사가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 중 부산상의에 회비를 내는 기업은 거의 없다. 이른바 ‘비활성 회원’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다태살’,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는 기업 입장에서 ‘다창본’, 즉 다시 창업해도 본사를 부산에 두고 싶은 도시로 환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산업은행과 HMM 본사를 부산에 유치하는 것 못지않게 오랫동안 부산을 지켜 온 해운기업을 지역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소통과 홍보는 그래서 더 절실하다. 해운은 새로운 선박을 주문하고, 선용품을 구매하며, 선원을 고용하는 등 전·후방 효과가 크다. 해운이 없으면 조선산업도, 항만 연관 산업도 성장할 수 없다.

MSC, CMA CGM, 하파그로이드는 지방에 본사를 둔 것이 아니라 ‘지방이 키운 글로벌 해운기업’이라고 보는 게 옳다. 윤 대통령은 ‘지역 주도’의 균형발전을 선언했다. 해운기업과 부산상의의 새로운 소통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소통을 위한 좌담회가 필요한 이유다. HMM 본사 이전도 여기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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