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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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영토사와 민족사가 별개라는 특징을 지닌다. 특유의 유목 생활과 민족 이동 때문에 워낙 넓은 아시아와 유럽 땅 곳곳에서 명멸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와 아시리아를 포함한 오리엔트, 그리스·로마, 초기 기독교, 비잔틴, 이슬람 세계가 줄줄이 다 들어 있다. 가위 인류 문명의 용광로라 할 만하다. 우리 역사에서는 흉노, 돌궐, 위구르족이 이들과 연관된 이름들이다. 실제로 731년 고구려가 돌궐 제국 왕의 장례식에 조문 사절을 보냈다는 당시의 돌궐 비문이 남아 있다. 중국이나 신라·고려에서는 위구르인을 회회인(回回人·이슬람인)으로 기록한 문헌들이 흔하다. 알타이 문화를 공유해 우리와도 친근한 편이라서 터키는 지금도 ‘형제의 나라’로 불린다.

최근 유엔이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변경해 달라는 터키 정부의 요청을 승인했다.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터키는 영어(turkey)로 ‘칠면조’나 ‘겁쟁이’ 등의 뜻을 지녀 부정적 뉘앙스가 다분하다. 터키인들은 이 이름이 달갑지 않아 이미 오래전부터 튀르키예를 써 왔다. 이는 ‘터키인의 땅’이란 뜻이다.

지구촌의 수많은 나라만큼이나 국호를 바꾼 사례 역시 숱하다.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 위치한 가나(전사의 왕)는 1957년까지 골드코스트라는 국호였고, 인도 남쪽의 섬나라 스리랑카(눈부시게 빛나는 섬)는 실론이라는 옛 이름을 바꾼 경우다. 아프리카 남부의 짐바브웨(돌로 된 큰 집)는 과거 식민지 총독의 이름을 딴 로디지아로 불렸다. 대부분 식민 지배에서 독립하거나 공화국으로 재탄생하면서 새 국호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미얀마는 군부정권이 원래의 국호 버마 대신 실제 발음에 가까운 이름을 선택한 사례다. 이름을 가장 많이 바꾼 나라는 단연 캄보디아다. 현대사의 곡절과 함께 크메르공화국, 캄푸치아민주공화국, 캄푸치아인민공화국, 캄보디아국으로 변신하다가 캄보디아왕국이라는 원래 국호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름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들 한다. 하물며 나라 이름의 소중함이야 오죽할 것인가. 국호 변경은 과거의 아픔을 씻고 국격을 세워 미래로 나아가려는 민족주의적 의지의 산물일 테다. 터키의 경우 재선을 노리는 현 대통령이 실정을 무마하고 지지층을 모으려는 포퓰리즘의 일환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국호 변경이 과연 터키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하게 될지 궁금하다. 참, 터키가 아니라 튀르키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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