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연극 도시 밀양을 생각한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밀양공연예술축제’가 22회를 맞았다. 올해는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 밀양’을 함께 개최하여 밀양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극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지방의 활력을 수도권이 흡수하고, 소도시의 가능성을 대도시가 가져가는 중첩된 공간 모순이 일반적인 우리 사회에서 밀양시가 명실상부한 연극 도시로 도약하는 과정이 순조로우리라고 예견하긴 어렵다. 아트센터나 연극촌(‘밀양 아리나’로 개명)과 같은 하드웨어를 발판으로 공연예술축제를 지속한다는 사실로 연극 도시라는 이름에 상응하는 위치에 도달하진 못한다. 따라서 ‘국립 연극 아카데미’가 설립되고 드라마 박물관과 드라마 도서관 등이 배치되는 일이 필수 과제가 되었다. 순수예술 장르인 연극이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아니라 소도시의 몫이 될 수 있다라는 타당성을 논변해야 할 시점이다.

연극은 농적 세계의 협동과 협업의 정신과 닮아 있다. 게오르그 짐멜이 말한 대로 배우는 ‘역할의 이타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마치 농부가 자신이 심은 식물과 대화하면서 생명을 기르듯이 배우는 상상 속의 타인으로 들어가 섞이고자 한다. 연기는 역할과의 오랜 작업을 통한 관계 예술이다. 배우와 농부는 관계의 존재들이다. 그는 다른 배우와 함께 하나의 무대를 형성하는데 이는 농부들이 서로 힘을 합쳐 농사를 전개하는 일로 비유될 수도 있겠다. 배우와 농부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전위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농업만이 아니라 땅과 더불어 사는 ‘농적 삶’의 기반이 튼튼한 밀양시가 연극 예술의 협동 정신을 표상하는 장소가 되어도 좋겠다. 연극은 디지털이 매개된 첨단 예술과 달리 공동의 수행에 가깝다. 연극과 농업을 연계하는 창의적 발상은 새로운 공동체를 탄생시키고, 사람들을 대지로, 로컬로, 마을로 귀환하게 할 수 있다.

공연예술축제 22회 맞았지만
명실상부한 위치 도달했을까

밀양 인구 10만 붕괴 눈앞
소멸가능도시 포함돼 답답

식량안보 위협받는 시대
밀양 귀환 인구 증가하길


두루 알다시피 ‘지방소멸’이라는 무서운 말이 회자하고 있다. 이는 2014년 마스다 히로야를 좌장으로 한 ‘일본창성회의’에서 작성한 <성장하는 21세기를 위해: Stop 저출산·지방활력전략>(‘마스다 보고서’로 통칭함)이 발표되면서 널리 퍼진 말이다. 이 보고서는 2040년까지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896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의 파괴력은 매우 컸고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만 아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말 전국 시·군·구 107곳을 대상으로 인구증감 상황을 분석하여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 고시한 바 있다. 경남의 경우에 18개 시군 중에 11곳이 포함되었고 시 단위 가운데 밀양시가 유일하였다. 1960년대에 25만 명이 넘던 인구가 현재 10만 3525명에 불과하니 머잖아 10만이 붕괴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야마시타 유스케가 비판하듯이 ‘마스다 보고서’는 인구문제를 공론화한 점에 의의가 있으나 도시의 정의(正義)에 입각하면서 여러 가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구 20만 정도의 ‘지방중핵도시’를 방위선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어 실제로 농촌과 어촌과 산촌을 버리자는 말에 다름이 없다. 또한 일극 집중을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도 못하다. 실제 진짜 관심은 재정문제라는 이야기이다. 규모의 인구를 고밀도로 유지하는 도시를 바람직한 공간으로 간주하고 인구 과소지역은 바람직하지 못한 곳으로 사고하는 재정 준칙을 확산한다. 인구와 재정이라는 ‘차가운 객관주의’를 업고 도시의 정의를 휘두른 형국인데, 우리 사회에서도 수도권 일극 체제를 비판하면서 이에 지방 대도시를 마주 세우려는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이 속에 중소도시, 특히 소도시나 농어촌 마을이 포함되어 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지방회생’을 웅변해야 할 지점이다.

코로나19로 식량 수출을 제한하는 국가가 30곳 이상이 되었다. 말레이시아로부터 생닭을 수입하던 싱가포르는 주요 식자재 부족으로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식품 원료의 68.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싱가포르와 같은 상황을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5.8%이고 곡물 자급률(사료 포함)은 20.2%로 OECD 최하위권에 속한다. 개발 열풍으로 경지 면적이 급감하여 2012년에 비할 때 10년 사이에 논 14.7%, 밭 3.0%가 사라졌다고 한다. 1970년 곡물 자급률이 80.5%였으나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는 세계 32위로 심각한 상황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고 새로운 공간 정의의 실현이 시급하다. 바로 이와 같은 사유의 거점이 밀양이 될 수 있겠다. 농적 생명 문화와 자립형 산업이 집적된 고장이기 때문이다. 연극 도시 밀양으로 귀환하는 새로운 인구가 창출될 날을 기대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