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제발…” 때 이른 폭염에 폐사 우려… 잠 설치는 양식 어민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10일 오전 경남권 최대 양식어류 산지인 통영시 산양읍 앞바다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어민들이 여름나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김민진 기자 10일 오전 경남권 최대 양식어류 산지인 통영시 산양읍 앞바다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어민들이 여름나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김민진 기자

“사람도 축축 늘어지는 판에, 펄펄 끓는 물 속에 갇힌 놈들은 오죽하겠습니까.”

10일 오전 경남권 최대 양식어류 산지인 통영시 산양읍 앞바다. 한여름 육지가 가마솥이라면 바다는 한증막이다. 높은 습도 탓이다. 바다 위 가두리 양식장 뗏목에 발을 디딘 순간 숨이 턱 막힌다. 그나마 피할 공간이라도 있는 육지와 달리 그늘도 없는 이곳에선 서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경남·전남 연안 전역 ‘고수온 관심단계’

최악 피해 발생한 작년보다 이른 시점

남해 강진만은 폐사 수온인 28도 넘어


이틀 전 내린 단비도 성난 바다를 삭히긴 역부족. 수온계엔 23.8도가 찍힌다. “여기서 딱 멈추면 좋을텐데.” 시꺼멓게 그을린 어민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작년 여름 애지중지 키운 우럭(조피볼락) 수만 마리가 고수온에 떼죽음하는 피해를 본 어장주는 그때 악몽이 떠오른 듯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그는 “단 하룻밤 사이 둥둥 떠올랐다”면서 “제발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 주면 좋으련만, 못해도 한 달 이상은 밤잠을 설칠 듯하다”고 푸념했다.

본격적인 여름 나기에 나선 경남 남해안 양식 어민들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올 여름, 역대 최악의 고수온 피해가 발생한 지난해에 버금가는 불볕더위가 예고된 탓이다. 떼 이른 폭염에 바다도 달아오르기 시작하면서 어민들도 전전긍긍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6일 경남과 전남 연안 전역에 ‘고수온 관심단계’를 발령했다. 이는 작년보다 1주일 이상 이른 시점이다. 고수온 특보는 수온 상승이 예상될 때 ‘관심’으로 시작해 양식 어류의 폐사 한계 수온인 28도를 넘어서면 ‘주의보’로 대체된다. 이어 주의보 상태가 3일 이상 지속하면 ‘경보’로 격상된다. 현재 전남 앞바다는 경보로, 경남 서쪽 해역은 주의보로 상향된 상태다. 경남에서도 수심이 얕은 남해 강진만은 이미 28도를 넘어섰다.

수과원은 “장마가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이번 주 중반 이후 수온이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는 주말을 전후해 경남 앞바다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작년 여름 고수온으로 숭어 1만 5000마리가 집단 폐사한 한산도 인근 양식장. 부산일보DB 작년 여름 고수온으로 숭어 1만 5000마리가 집단 폐사한 한산도 인근 양식장. 부산일보DB

양식 어류의 경우, 경보 단계에 2~3일 노출되면 폐사해 버린다. 수온 1도는 육상 기온 5도 이상에 맞는 변화로 해양 생물에 치명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남 앞바다에서 사육 중인 양식 어류의 절반 이상이 고수온에 취약한 한류성 어종이다. 전체 2억 3000만여 마리 중 1억 4000만여 마리가 찬물을 좋아하는 우럭(조피볼락)과 숭어다.

도내 고수온 피해는 2012년 첫 집단폐사(165만 마리·18억 원) 집계 이후 양식 어민들 사이에 매년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특히 지난해는 761만 마리(111억 원)가 떼죽음해 최악의 해로 기록됐다. 대부분이 우럭이었다. 고수온이 ‘붉은 재앙’ 적조 못지않은 골칫거리가 돼버린 것이다.

피해 예방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는 적정 수온 유지가 가능한 해역으로 양식장을 통째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내만 곳곳이 양식시설로 포화상태라 옮길 해역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설령 좋은 자리를 확보해도 실행은 쉽지 않다. 긴 폭염에 이미 어류의 체력과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 이동 과정의 스트레스와 급격한 환경 변화를 버텨내기 어렵다. 자칫 또 다른 폐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천영기 통영시장은 8일 욕지도 인근 해상 가두리 양식장을 찾아 고수온, 적조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통영시 제공 천영기 통영시장은 8일 욕지도 인근 해상 가두리 양식장을 찾아 고수온, 적조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통영시 제공

도는 연안 시·군과 협력해 ‘고수온 비상 대책 상황실’을 꾸리고 재해대책명령서를 발급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섰다. 피해 제로화를 목표로 취약 해역 양식장에 면역증강제, 저층해수공급장치, 산소발생기 등 대응 장비를 보급하고 실시간 수온 정보도 공유하며 예방에 집중하고 있다.

통영시 관계자는 “상시 모니터링과 현장 지도를 통한 초기 대응에 전력을 쏟을 방침”이라며 “어민들도 피해 최소화를 위해 조기출하, 사료 공급 중단, 액화 산소 공급 등 양식장 관리에 각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