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효정 라이프부장·젠더데스크

지난달 24일 미국에선 나라를 들썩이게 할 엄청난 판결이 나왔다. 전 세계 언론들이 빠르게 이 소식을 전했고 미국 내 극심한 분열이 일 정도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50년가량 유지돼 오던 여성들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한 것이다.

한국 언론사들은 이 판결을 보도하며 고민에 직면해야 했다. 이번 판결을 핵심적으로 설명하는 용어에 대한 선택 때문이다. 기존에 사용했던 ‘낙태권’이라는 용어를 고집한 언론도 있고, 그 용어 대신 대안으로 ‘임신중지권’으로 보도한 언론들도 있다. 〈부산일보〉 역시 기자와 젠더데스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기사와 제목 모두 ‘임신중지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 놀라게 한 연방법원 판결 보도

‘낙태권’ 대신 ‘임신중지권’ 표현 사용

차별과 비하, 편견이 있는 단어 대신

가치중립적인 대체어들 나오고 있어

언어는 인간 행동· 사회 변화 이끌어

인식의 변화에서 혁명이 시작되기도


사실 언론 보도 기사는 익숙한 용어로,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수습 기자로 선발된 후 일정 기간 이 규칙을 바탕으로 기사 쓰기를 연습하게 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이번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 기사 역시 기존에 많이 썼던 낙태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7월, 현재 시점에선 ‘낙태권’이 아니라 ‘임신중지권’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중요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낙태’라는 표현은 임신의 주체인 여성이 아니라 태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단어이다. 더불어 ‘태아를 떨어뜨린다’라는 뜻에선 이를 범죄로 단정하거나 나쁜 행동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말 자체가 이미 행위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몇 년 전부터 가치중립적인 대체 단어로, 임신의 주체인 여성이 임신 상태를 중단한다는 뜻인 ‘임신중지’라는 말을 ‘낙태’ 대신 사용하고 있다.

오랜 기간 사용했고 대다수 사회 구성원이 채택한 말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인간의 사고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사회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는 그 사회 전반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촘스키를 비롯해 세계 석학들은 공동체의 언어 습관 기반 위에 현실 세계가 형성되며 현실의 해석에 큰 영향을 준다고 역설했다.

이런 이유로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여성, 남성, 장애인, 소수자, 어린이 등 어떤 계층에 대해 차별의 의미가 있는 단어를 찾아내고 그 단어 대신 가치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하자는 운동이 학계와 시민단체, 지자체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오는 몇 개를 살펴보자. 우선 한국 언론 기사에 여 씨가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교사, 여직원, 여교수, 여군, 여의사 등 남성에 대해서는 붙이지 않는 성별 표시를 굳이 여자에게는 붙이는 경우를 말한다. 남성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성차별에 해당한다. 여교사, 여직원, 여교수, 여의사도 그냥 교사, 직원, 교수, 의사로 표현하면 된다. 비슷한 예로 ‘○○녀’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사회문제, 저출산은 저출생으로 바꾸어야 한다. 저출산에는 여성이 아이를 적게 낳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오해의 의미가 있다.

아이를 태우고 산책하는 이동 수단은 엄마만 사용할까. 요즘엔 아빠가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로 부르는 게 맞다. 육아는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데 왜 육아카페는 맘카페로, 어린이집 차를 태우는 곳을 맘스스테이션으로 부를까. 육아카페, 어린이승하차장으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남편 쪽만 높여서 시댁이고 아내 쪽은 처가라고 부르는 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제 처가 말고 처댁에 간다고 말하자. 비슷한 예로 남편 가족은 도련님, 아가씨로 존칭을 사용하고 아내 가족은 처남, 처제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됐다. 처남, 처제처럼 남편 가족도 부남, 부제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서툴거나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주린이’ ‘요린이’처럼 ‘○린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인권위는 이 단어가 아동을 독립적 인격체로 보지 않고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기에 아동 비하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몇 가지 예만 들었지만, 가치중립 언어사전에는 매년 새로운 단어들이 더해진다. 한국은 현재 캠페인 차원의 권고 사항이지만, EU는 이미 2009년 성차별 단어 사용을 금지했고 독일이나 일본은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단어 몇 개 바꾼다고 큰 변화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식의 작은 변화가 거대한 실천을 불러올 수 있다. 혁명은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