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전쟁할 수 있는 일본?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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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정부는 봉기한 농민들을 달래는 대신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청나라는 3000의 병력을 보냈다. 갑자기 일본이 끼어들었다. 무려 1만에 가까운 병력을 인천으로 급파했다. 명분은 동학 농민군으로부터 조선 거류 일본인과 공사관 등을 보호한다는 것. 결국 동학혁명은 실패로 귀결됐다. 그런데도 일본군은 철수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이 “이제 다 끝났으니 돌아가라”고 요청했으나 일본은 오히려 서울 일원에 군을 주둔시키고 경복궁까지 점령해 버렸다. 그러고는 친일 내각을 꾸리게 하고서 노골적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했다. 이후 흘러간 상황은 두루 익히 아는 바다.

요 근래 일본에서의 일을 보자 하니, 우리 한민족의 유전자에 각인돼 있는 ‘일본군 경험’의 트라우마가 슬금슬금 깨어나는 듯해 몹시도 께름칙하다. 일본에서는 지금 개헌 바람이 드세다. 지난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을 비롯한 소위 개헌 세력이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해 개헌안 발의 정족수를 확보했다. 이미 중의원에서도 개헌 찬성 세력이 3분의 2를 넘긴 상태라 개헌의 가능성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자민당 등이 추진하는 개헌의 요체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겠다는 것이다. 자위대는 사실상, 그것도 세계 5위의 전력을 보유한, 강력한 군사 조직이다. 그런데 ‘평화 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은 전쟁 등을 영구히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위대 존재 자체가 위헌인 셈이다. 만일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면, 이는 곧 군대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고 나아가 파병이나 전쟁도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위헌 논란쯤은 무시한다는 요량인지 자위대는 오래전부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 왔다. 이런저런 핑계로 페르시아만, 캄보디아, 이라크, 아덴만 등에 파병된 전력이 있다. 이런 형편에 자위대를 인정하는 개헌까지 이루어진다면 그 후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 어쩌면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으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대선 직전인 지난 2월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토론 과정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언급했다가 유사시 일본군의 한반도 진출을 허용하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으며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그만큼 일본의 개헌은 우리에게 극도로 민감한 문제라 간과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활개 치는 일본군? 상상하기조차 싫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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