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시계 / 권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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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진(1977~ )

오차 없이 정확하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이별을 대면하는 순간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반경 범위 내에서

째깍째깍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기다려 본 자들은 안다


-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2021년 10월호) 중에서


시를 모르는 철학자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시와 철학의 긴밀한 관계 때문이지 싶다. 시인은 드물게 철학을 전공한 철학도 시인이다. 대학에 철학과와 국문학과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대학은 철학과 문학이 없는 대학이 되어버렸다는 자조가 흘러나온다. 이 시인의 언술대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이별 앞에서는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사람인 것인가. 냉정과 붕괴 그리고 다시 냉정을 오가며 인류는 힘겨운 생을 이어가고 있다. 선술집의 낭만, 자유를 부르짖던 젊은 문학도와 철학도의 취기가 그립다. 이 그리움은 ‘기다려 본 자’들만 아는 그리움이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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