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닐다, 연극에 빠지다, 연꽃에 취하다…밀양서 만난 세가지 '연'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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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느긋한 문화휴가 1박 2일
둔치공원 꽃정원‧송림 따라 느긋한 산책
아리나연극촌서 대한민국연극제에 몰입
만개 앞둔 연꽃단지엔 신선‧상큼한 아침

낮 기온이 30도를 훨씬 넘는 무더위가 이어진다. 휴가를 떠나야 하지만 폭염을 생각하면 집 밖으로 나서는 게 무서울 정도다. 시원한 호텔에 묵으면서 아침저녁에 숲, 강변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에어컨이 잘 나오는 극장에서 연극을 즐기는 게 최고다. 부산 인근에 그런 여행에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 시원한 강과 숲이 있고 조용한 호텔이 있는 밀양이다. 마침 대한민국연극제와 공연예술축제도 열리고 있다.


밀양연꽃단지와 밀양아리나연극촌. 밀양연꽃단지와 밀양아리나연극촌.

■삼문 둔치공원

부산대구고속도로를 타고 남밀양 IC에서 내린 자동차는 10여 분 뒤 밀양강을 가로지르는 밀주교를 건넌다. 시원한 강이 흐르는 삼문 둔치공원 산책로 뒤에 꽤 큰 규모의 온천 호텔이 보인다. 밀양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4성급의 아리나 호텔이다.

아리나 호텔이 자리를 잡은 곳은 섬이다. 행정 구역은 삼문동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객실은 밀양강을 바라보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푸른 강물과 초록색으로 뒤덮인 산과 산책로다. 짐을 풀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가벼운 샌들을 신고 섬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로 나선다. 섬 둘레는 5km 정도다. 느긋하게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섬을 에워싼 순환도로는 봄에는 하얀 벚꽃 터널로, 여름에는 짙은 녹음을 드리우는 숲 터널로 변한다.


삼문 둔치공원 산책로. 삼문 둔치공원 산책로.

둔치공원은 산책로를 따라 꽃 공원, 조각 공원, 삼문송림, 파크골프장, 야외공연장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꽃 공원에서는 계절에 따라 장미, 유채 등 다양한 꽃이 핀다. 여름인 지금은 코스모스와 분홍바늘꽃, 리아트리스가 공원을 수놓고 있다.

조각공원을 지나 영남루 쪽으로 걸어가면 산책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삼문송림이 나타난다. 2002년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령 100년을 넘은 곰솔 6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삼문송림. 삼문송림.

곰솔송림 안으로 들어가 바다로 흘러가는 밀양강을 따라 나란히 걷는다. 소나무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곳곳에 강 쪽을 향해 평상이 설치돼 있다. 샌들을 벗고 평상에 올라가 다리를 쭉 뻗는다.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보며 이른 바 ‘멍 때리기’에 몰입한다. 나그네가 강을 바라보는 것인지, 강이 나그네를 구경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소나무 사이에는 빽빽하게 심어진 푸른 식물이 보인다. 보라색 꽃이 활짝 피면 상당히 아름다운 맥문동이다. 곳곳에서 화사한 보라색 꽃이 하나둘씩 머리를 내민다. 아직 만개하지는 않았다. 이달 말이나 돼야 제법 볼 만한 풍경을 연출할 모양이다. 꽃은 다른 곳에도 있다. 삼문송림 제방을 넘어가면 공설운동장과 다른 송림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9월이 되면 화사하고 화려한 하얀색 구절초가 숲을 뒤덮는다.


삼문 둔치공원 꽃정원. 삼문 둔치공원 꽃정원.

■밀양아리나연극촌

호텔로 돌아와 가볍게 샤워를 한다. 투명한 창 너머로 보이는 둔치공원 풍경은 여전히 눈을 시원하게 한다. 몸이 상쾌해졌다고 느껴질 무렵 다시 자동차를 몰고 달린다. 이번 행선지는 호텔에서 10분 거리인 밀양아리나 연극촌이다. 오후 5시 스튜디오1에서 펼쳐지는 연극 ‘살아 있는가’를 보러 가는 길이다. 처음에는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관람할 예정이었지만 입장권이 매진되는 바람에 급히 방향을 바꿔야 했다.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가득 찬 극장에서 진행된 ‘살아 있는가’ 공연시간은 90분 정도였다. 밀양에서 학교를 다닐 때 옛 남보극장 인근에 있던 미리벌극장에서 연극을 보러 간 추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그곳에서 연극을 공연한 사람, 관람하던 사람은 다 어디에 있을까.


대한민국연극제와 공연문화축제 안내판. 대한민국연극제와 공연문화축제 안내판.

연극 관람을 마치고 나온 시간은 오후 7시 이전이었다. 밀양 시장에 들러 호텔에서 먹을 삼랑진 복숭아를 산다. 아삭하고 달콤한 게 꽤 맛있다. 여행은 먹고 보고 듣는 ‘삼미(三美)’를 즐겨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연극제와 공연문화축제는 7월 말까지 밀양아리나연극촌,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청소년수련관, 해천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된다. 전국에서 모인 연극 팬 중 일부는 펜션을 한 달 간 빌려 숙식하면서 연극을 보러 다닌다고 한다.


밀양아리나연극촌 성벽극장. 밀양아리나연극촌 성벽극장.

■밀양연꽃단지

아침 일찍 다시 밀양아리나연극촌 방면으로 차를 달린다. 연극촌 바로 옆에는 연꽃단지가 조성돼 있다.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꽃단지다. 2만여 평이라고 하니 면적은 상당히 넓다. 연꽃은 6월 중순쯤 하나둘씩 봉우리를 피우기 시작해 7~8월에 만개한다.

지난달 라벤더와 이달 초 수국을 보러갔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올해는 대부분 꽃이 늦게 피는 경향이 있다. 밀양연꽃단지의 연꽃도 마찬가지다. 꽃봉오리만 올라왔을 뿐 꽃이 피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이달 말이나 돼야 화려한 자태를 보여줄 모양이다.


밀양연꽃단지. 밀양연꽃단지.

밀양연꽃단지의 연잎은 제법 크고 넓다. 연잎 하나가 사람 머리 두세 개 정도는 될 성 싶다. 손을 대어 보니 손을 덮고도 한참 남는다. 마침 전날 내린 빗물이 연잎에 고였다. 개구리 한 마리가 빗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사람을 보고도 달아날 기색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분홍색과 흰색이 적당히 섞인 커다란 연꽃 하나가 나그네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낯선 이를 만나는 걸 수줍어하면서도 머리를 돌리지는 않는다. 아주 도도하고 고고하게 고개를 우뚝 세우고 있다. 연꽃은 부처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피었다고 한다. 모든 신도는 극락세계에 가면 연꽃 위에서 신으로 태어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도도한 모습으로 버티고 선 걸 이해할 만하다.


밀양연꽃단지. 밀양연꽃단지.

연꽃을 다룬 사자성어 중에 ‘이제염오(離諸染汚)’라는 게 있다. 연꽃은 아주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향기로운 품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 우뚝 선 한 송이를 보니 문득 이제염오가 생각한다. 지금 세상에 연꽃 같은 사람은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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