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88만 원 세대, 시급 1만 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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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매년 7월이면 노사는 다음 연도 최저임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여 왔다. 놀랍게도 올해는 8년 만에 법정 심의기한을 지키며 6월 말 일찌감치 최저임금이 공익위원 안으로 결정되었다. 2023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5% 오른 시급 9620원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반발의 목소리를 높였다. 졸속 처리 논란과는 별개로 공익위의 중재안을 노사 중 한쪽이라도 군말 없이 수긍한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내년은 사상 처음으로 주 40시간 기준 풀타임으로 근무했을 때 수령하는 최저임금 월급 환산액이 200만 원을 넘어선다. 직접적인 88만 원 세대는 아니었지만 그들을 지켜봤던 후배 세대로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88만 원 세대〉가 출간되었던 2007년도 최저임금 시급은 3480원이었다. 사실 당시 책에서 사회초년생이 받는 월급으로 상정한 88만 원은 2007년도 최저임금 기준 월급인 73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0년에도 최저월급은 88만 원에 도달하지 못한다. 최저임금이 4320원으로 오른 201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88만 원을 벗어난다.


한국의 최저임금 역할 변화

‘최소 생계 보장 의미’ 아냐

상대적 빈곤 관점 접근 필요


근로수입에도 여력 있어야

먹고사는 기본적 문제 넘어

자아실현 등 충족 가능해야


과연 88만 원으로 한 달을 살 수 있을까. 단순히 그때는 가능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삶의 질에 따라 그건 언제라도 불가능하고 또 가능할 수 있다. 대신에 노동의 대가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와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최저임금의 기능을 말하고 싶다.

OECD가 집계하는 빈부 통계는 대부분 상대적 빈곤만을 취급한다.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소득을 일렬로 세워 중앙값을 찾았을 때 소득이 중앙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율을 말한다. 절대적 빈곤이 최소 생계수준을 누리지 못할 만큼 극빈한 상황을 규정한다면 상대적 빈곤은 보통의 사회구성원의 생활수준을 누리지 못하는 빈곤이다.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절대적 빈곤층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OECD가 상대적 빈곤에 집중하는 건 부를 축적한 사회에서는 풍요 속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사회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날 기성세대가 기여한 경제발전 덕분에 대한민국은 더 이상 배 곪으며 굶주림을 걱정하는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 무대에서 다방면의 활약을 펼치며 날로 위상이 높아지는 가운데 소득 양극화와 계층 고착화를 고민해야 하는 사회다.

과거 한국은 최저임금을 절대적 빈곤의 관점에서 다뤄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일했으니까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도록 입에 풀칠하는 최소한의 대가를 쥐어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여가, 문화, 교육, 자아실현과 같은 2차적 욕구가 있다. 이런 욕구를 소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누릴 때 우리는 선진국 또는 좋은 사회라고 부른다.

대다수가 근로를 통해 돈을 벌고 근로소득으로 삶을 살아간다. 수입이 몽땅 지출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생활일 것이다. 여력이 필요하다. 근로소득만으로도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고 약간이라도 저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야 한다. 최저임금 근로자에게도 여력은 보장되어야 한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첫 아르바이트에서 최저임금을 받았다. 서울의 도넛가게에서 주말 5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고 2010년 당시 최저시급은 4110원이었다. 주말에 더욱 손님이 몰려들었고 한 시간 동안 수십 개의 도넛과 수십 잔의 음료를 팔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한 시간을 일하고도 정작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으론 도넛과 음료 하나 사 먹지 못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한 끼 식사값으론 턱없는 금액이었다.

지금은 적어도 1시간을 일해서 밥 한 끼는 사 먹을 수 있다. 외식물가가 치솟으며 위협받고 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9000원이면 순댓국 한 그릇은 사 먹을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일한 돈을 모아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 일한 값으로 식비는 감당할 수 있어야 다른 항목에도 지출할 여력이 생긴다.

최저임금이 높은 국가에서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 이미 등장했다. 최저임금이 2만 원에 육박하고 주말 근무의 경우 시급에 1.5배를 가산하는 호주에서는 카페 아르바이트와 청소부, 회사원의 임금수준에 차이가 작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세대에게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삶은 생계유형의 다양한 옵션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떤 형태의 노동을 하든 그 대가로 생계는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바라는 건 어느 직업을 갖더라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게 되어 각자가 원하는 일을 선택하며 행복할 수 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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