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수출 합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러, 오데사항 폭격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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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러시아제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 2발이 떨어진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가 연기로 뒤덮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러시아제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 2발이 떨어진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가 연기로 뒤덮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식량난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였던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에 합의한 직후 러시아산 미사일 2발이 수출항에 떨어진 것이다. 국제사회와 러시아 간 갈등이 또다시 깊어지면서 곡물 수출 재개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우크라·러시아·유엔·튀르키예

흑해 통한 곡물 수출 최종 서명

러, 이튿날 수출 항구에 미사일

세계 식량난 해소 기대에 ‘찬물’

우크라 “예정대로 수출 진행할 것”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엔, 튀르키예는 지난 22일(현지시간)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 협상안에 최종 서명했다. 기뢰가 깔린 흑해에 안전 항로를 마련해 우크라이나 곡물과 러시아 곡물, 비료의 수출길을 열어주기로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밀, 옥수수, 해바라기유 수출국이지만 올 2월 말 러시아의 침공으로 수출이 중단됐다. 흑해 주변에 묶인 우크라이나산 밀만 2000만~2500만 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세계 식량난이 고조되면서 지난 14일 4자 협상이 추진돼 왔다.

그러나 협상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 4자 협상 타결 이튿날인 23일 곡물 수출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러시아제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 2발이 떨어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남부 작전사령부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순항미사일 2발이 우크라이나의 항구인 오데사의 기반 시설을 타격했으며 다른 2발은 방공망에 격추됐다”고 밝혔다. 사상자 발생 여부나 항구의 구체적 피해 상황은 공개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는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러시아가 무슨 약속을 하든 그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을 방법을 찾을 거란 점을 입증한다”고 비판했다.

국제사회도 일제히 이번 사태를 규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파르한 하크 유엔 부대변인은 23일 성명을 내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오데사 항구에서 발생한 공격을 명백히 규탄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도 이날 “이스탄불 합의 하루 뒤 곡물 수출에 중요한 목표물을 공격한 것은 비난받을 만하고, 다시 한번 국제적 법과 약속에 대한 러시아의 완전한 무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 등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러시아는 튀르키예 측을 통해 이번 공습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튀르키예 측도 이같은 사태에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러시아를 명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튀르키예 훌루시 아카르 국방부 장관은 “우리를 정말 걱정하게 만든다”면서도 “러시아가 우리에게 이번 공격과 러시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4자 합의 직후 이번 폭격이 가해지면서 협상안의 이행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당장 당사국 간 갈등으로 4자간 공동 조정센터 설립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동 조정센터는 선박에 무기가 실려 있는지를 확인하는 등 수출입 업무 전반을 관리·감독한다.

우크라이나는 일단 예정대로 곡물 수출을 진행할 계획이다. 미콜라 솔스키 우크라이나 농업부 장관은 “공습으로 곡물 수출 관련 시설 일부가 파괴됐고, 수출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합의는 러시아가 아닌 유엔, 튀르키예와 했다. 합의가 효력을 발휘하는 한 곡물 수출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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