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 거라던 어머니 얼굴 생생…경보기만 울렸다면 가족 모두 살았을 것”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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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송동 화재 유가족 인터뷰

부산 해운대구 고층 아파트 화재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A 씨가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 해운대구 고층 아파트 화재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A 씨가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가족 3명이 한꺼번에 숨진 부산 해운대구 고층 아파트 화재 사고(부산일보 6월 28일 자 8면 등 보도)의 유가족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의 안일한 대처에 비통함을 드러냈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을 한순간에 잃은 유가족 A 씨는 “작은 불이 야금야금 타며 집 안을 유독 가스로 채울 때까지 화재경보기는 울리지 않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수도권에서 일하는 A 씨는 매일 한 시간씩 전화 통화를 할 정도로 가족과 가깝게 지냈다. A 씨는 불이 나기 불과 2시간 전에도 가족과 통화했지만,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다. A 씨는 “지난달 어머니 생신 때 가족과 함께 식사하며 ‘고마워, 오래 살게’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던 어머니 얼굴이 아직 생생하다”면서 “그 모습을 이젠 휴대전화 속의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그는 힘들게 마련한 가족의 보금자리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현실도 받아들일 수 없다. A 씨는 “우리 아파트는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한 부모님이 피땀흘려 일해 마련한 집이다”면서 “행복한 기억과 가족 모두를 앗아간 이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반드시 제대로 짚고 넘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아파트 전체 화재경보기 오작동

관리사무소 안일한 대처 피해 키워”

책임 소재 규명 경찰 수사 촉구


앞서 지난달 27일 새벽 A 씨 가족의 집에서 불이 나기 직전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에서 화재 감지기가 오작동했다. 이에 관리사무소 측이 아파트 전체 10여 개 동의 화재경보기를 모두 가동 중단하는 바람에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안타깝게 숨지고 말았다.

A 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의 미흡한 대처로 피해가 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리사무소 직원 3명 중 화재경보기 담당 직원 한 명이 오작동 처리로 자리를 떴고, 이후에 진짜 불이 감지됐을 때 남은 직원들이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면서 “화재경보기만 울렸다면 새벽 시간 사람들이 깨어났을 것이고 안전하게 구조됐을 확률이 매우 높았을 것인데, 경보기를 복구하지 않은 조치는 살인 미수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부산에 임시 거처를 구해 사건 원인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직접 발로 뛰며 화재 당시 아파트 관리사무소 CCTV 영상을 확보하고, 소방 전문가와 변호사 자문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재실 직원들이 정지된 경보기를 복구하지 않은 점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현행 소방법상 화재경보기는 언제나 작동해야 하는데, 소방안전관리 보조자 자격을 가진 직원이 안일하게 대처한 부분은 명백한 업무상 과실이다”고 지적했다.

A 씨는 경찰이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를 명백하게 밝혀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재실 화재 수신기, CCTV, 컴퓨터의 시간 설정이 제각각일 만큼 부실하게 관리됐다”면서 “수사기관은 방재실 CCTV와 직원들의 통화 목록 등을 살펴 당일 직원들의 대처가 어땠는지 면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고가 난 당일 우리 집의 전력사용량이 평소와 다르지 않고 사용자 측의 과실도 없었는데 화재가 발생한 점으로 봐선 에어컨 제조사에 대한 조사도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 씨는 더는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의 안전불감증과 안일한 대응을 제대로 엄벌해 우리나라 인구 70%가 사는 아파트에서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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