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우영우 효과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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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편집국 부국장

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영상 콘텐츠 시장 최고 인기 작품이다. ‘우 to the 영 to the 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등 대사에서부터 우영우와 친구 동그라미의 독특한 인사법까지 세대를 초월했다.

‘우영우’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판타지와 허구가 허용되는 드라마다. 드라마니까 국내 최고 법학부 출신 아버지의 후배가 대표로 있는 대형 로펌에 장애인임에도 들어가고, 일부 ‘권모술수형’ 동료를 제외하고는 조직 내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우 받는다. 무엇보다 우영우처럼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자폐 장애인을 현실에선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점 때문에 자폐 장애를 포괄하는 상당수 발달 장애인 가족들에게 ‘우영우’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장애인은 우영우처럼 뛰어나야만,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냐는 서늘한 비판도 있다.


세계에서 주목하는 드라마 ‘우영우’

비현실적이라도 장애 인식은 개선


후천적 장애 90% 현실 생각하며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 고려해야


15년 묵은 차별금지법 국회 통과

사회 시스템 개선으로 나아갈 때


우리 주변에도 발달 장애인이 꽤 있다. 고리핵발전소 소송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군의 균도 씨도 1급 발달 장애인이다. 아버지 이진섭 씨와 세상 걷기를 하던 청소년은 어느새 서른을 넘긴 장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던 엄마의 소원은 점점 노쇠해져 가는 진섭 씨 부부의 불안과 맞닿아 있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는 장애인 가족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몇 시간 주간활동서비스 보조뿐이다. 가족의 영혼을 갈아 넣지 않고는 사회에 나올 수도, 독자적인 생활도 거의 불가능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에게는 ‘우영우’가 얼마나 허무하게 비칠까. 판타지에 잠시 웃고 울다 돌아온 현실의 괴리는 얼마나 공허할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영우’는 자신이 장애와 무관하다고 믿는 훨씬 더 많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온 다운증후군 작가 정은혜 씨처럼 장애인을 직접 출연시키지는 않았지만, ‘우영우’는 비장애인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단맛을 덧씌운 ‘당의정’같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국내 최고 로스쿨 수석 졸업과 만점에 가까운 변호사 시험 성적에도 우영우는 장애 때문에 취업 시장에서 차별 받았고, 그런 차별적 시각의 비장애인을 대변하는 동료도 등장한다. ‘우영우’는 장애인 차별이 옳지 않다는, 그들도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제를 내세우지 않는다. 행동을 그렇게 하는 동료 이준호·정명석·최수연을 통해 그렇지 않은 주변인이 허접해 보이는 대비효과를 만든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선 우영우의 부족한 점을 기꺼이 메우고, 늘 이해하고 지지하는 동료들이 있어 우영우의 활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동료들이 더 판타지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장애인 비율은 불과 10.6%뿐이다. 장애인 10명 중 9명은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얘기다. 자신은 장애와 무관할 것이라 믿는 비장애인도 산업재해, 교통사고, 질병 등 언제 어떤 이유로 장애를 입을지 모르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비롯한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호소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활동가들이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인 데 대해 정부·여당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장애가 나와 멀지 않다, 장애인도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잡는다면, 온갖 욕 들어가며 출근길 지하철 지연 시위를 굳이 할 필요도 없이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정부 예산과 사회 시스템도 자연스럽게 구축될 것이다.

차별하지 않아야 할 대상이 어디 장애뿐일까. 국가인권위원회는 종교, 인종, 장애, 학력, 지역, 외모, 성적 지향과 정치·사상적 신념 등 거의 모든 사유의 차별을 금하고 있다. 5년간 깎인 임금 30%만 복원해달라는 노동자의 평화적인 시위에 온갖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던 사람들은 겨우 4.5% 임금 인상을 해주고는 수천 억 파업 손실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민다.

방역까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각자도생 시대,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오로지 내 안위만 챙겨야 겨우 손해보지 않을 것만 같은 각박한 시대에 ‘우영우’가 던진 메시지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푸근해졌다면 거기에서부터 차별 철폐는 한 걸음씩 시작되어야 한다. 드라마 한 편에 너무 큰 의미 부여라 해도, 점점 위험 속으로 빠져드는 세상에 조용히 저항하는 작품에 공감하는 그들이, 우리가 희망이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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