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엽관제라 괜찮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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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미국 뉴욕 지역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태머니홀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친목과 자립이 목적이었는데 점차 정치 결사체의 성격을 띠더니 1850년 무렵에는 주 정부를 장악할 만큼 비대해졌다. 이들은 선거에서의 공로에 따라 관직을 나눠 주면서 각종 관급공사에 개입하는 등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태머니홀의 부정부패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그 원인으로 당시 미국 정계의 관행이던 엽관제(獵官制)가 지목됐다.

엽관제는 ‘spoils system’을 번역한 말이다. ‘spoil’은 전리품이란 뜻. 전리품을 적과 나누는 경우는 없다. 승리자가 독식할 뿐이다. 엽관제에서 관직은 곧 전리품이다. 선거에서 이긴 쪽이 관직을 다 차지하는 것이다. 1829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엽관제를 미국 인사행정의 기본으로 공식화했다. 당시 미국에서 정부 요직은 상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신라시대 골품제처럼 하류 계층은 관직에 나갈 길이 막혀 있었다. 엽관제는 이를 타파할 대안으로 제시됐다. 특정 정당에 승리를 안겨 준 유권자의 의사를 행정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하지만 엽관제는 정실 인사나 낙하산 인사로 전락할 우려가 컸다. 자리만 탐하는 모리배의 권력 나눠먹기로 인해 독직과 부정부패로 이어지기도 쉬웠다. 태머니홀은 그 전형적인 사례였다. 1881년에는 선거에서의 공로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며 대통령을 암살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엽관제는 실적제(merit system)에 기반한 팬들턴법이 1883년 제정되면서 미국에서 퇴출됐다.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에 대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지난 20일 “대통령실 채용은 엽관제”라고 강조했다. 엽관제라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해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엽관제가 일부 시행되고 있기는 하다. 장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강 수석의 해명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대선 캠프는 따지고 보면 사적 조직이다. 거기에 참여했다고 해서 무조건 공직을 챙겨 주는 게 옳으냐는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오른다. 1604년 선조는 임진왜란 때 도망가는 자신을 보필했다는 이유로 80여 명의 호성공신을 발표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내시나 의관, 잡부 등이 절반을 차지했다. 그와는 별도로 선무원종공신으로 무려 9000여 명을 지명했다. 거기엔 아전, 몸종, 노비까지 마구잡이로 포함됐다. 이를 실록에 기록한 사관은 탄식했다. “이 얼마나 외람된 일인가, 어찌 비웃음을 사지 않겠는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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