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큰불’ 껐지만 곳곳 남은 ‘잔불’ 처리 뜨거운 숙제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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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 온다”. 23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에서 하청노조의 점거 농성으로 조업이 중단됐던 30만t급 초대형원유운반선 진수 작업이 재개됐다. 대우조선해양은 2주간의 여름휴가 동안 특근을 통해 지연된 공정을 만회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물 들어 온다”. 23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에서 하청노조의 점거 농성으로 조업이 중단됐던 30만t급 초대형원유운반선 진수 작업이 재개됐다. 대우조선해양은 2주간의 여름휴가 동안 특근을 통해 지연된 공정을 만회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제공

노사 간 ‘강 대 강’ 대치에 정부의 공권력 투입 압박이 더해지면서 파국으로 치닫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이 막판 협상 타결로 일단락됐다. 파업 시작 51일째, 노동자 7명이 건조 선박 점거 농성을 시작한 지 31일 만이다.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초유의 생산 시설 점거로 인한 ‘노노 갈등’ 그리고 끝내 불발된 ‘부제소합의’ 탓에 불씨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협의회와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하청노조)는 지난 22일, 마라톤 협상 끝에 △임금 4.5% 인상 △설·추석 50만 원, 여름 휴가비 40만 원 지급 △폐업 사업장 조합원 일부 고용 승계를 골자로 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이어진 하청노조 임시 총회에서 잠정안이 찬성률 92.3%(참석 인원 118명 중 109명 찬성)로 가결되면서 지난했던 협상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극적 타결

유최안 ‘감옥 농성’ 종료 최악 사태는 피해

공정 지연 탓 보상금 지급·신인도 하락

부제소합의 매듭 못 짓고 ‘노노갈등’도

51일간 파업 후유증… 완전한 봉합 과제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타결된 지난 22일 협력사 대표인 권수오(왼쪽 세 번째) 녹산기업 대표와 홍지욱(네 번째)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이 타결 내용 브리핑을 한 뒤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타결된 지난 22일 협력사 대표인 권수오(왼쪽 세 번째) 녹산기업 대표와 홍지욱(네 번째)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이 타결 내용 브리핑을 한 뒤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로써 50일 넘게 이어진 파업은 종료됐지만,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시급한 숙제가 지연된 공정을 만회하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는 육·해상 플랜트를 제작하는 독(dock·선박 건조장) 2개를 합쳐 총 7개의 독이 있다. 하청노조가 점거한 곳은 세계 최대 규모인 1번 독이다. 초대형 상선 4척을 한꺼번에 건조할 수 있는 핵심 시설이다. 그런데 이번 파업으로 1번 독 내 모든 조업이 한 달 넘게 전면 중단됐다.

보통 선박 건조 계약에는 조선소 측 귀책 사유로 인도가 미뤄질 경우, 발주사에 지체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보상금은 하루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한다. 금전적 불이익 못지않게 납기 지연에 따른 신인도 하락 우려도 크다.

지연된 납기일을 맞추려면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앞선 고강도 구조조정과 긴 수주 절벽 여파로 숙련된 기술자들이 대거 조선소를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특히 조선업 특유의 다단계 하청구조와 이로 인한 저임금 탓에 현장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과거엔 휴일·야간작업으로 공기를 단축했지만, 지금은 ‘주52시간제’ 적용으로 이마저 쉽지 않다.

대우조선해양은 25일 시작되는 2주간의 여름휴가를 반납해서라도 밀린 공정을 만회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독 정비가 끝나고 휴가 중 특근 인원이 정해지면 26일부터 집중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갈수록 약해지는 파업 동력에다 정부의 공권력 투입 시사 등 안팎의 따가운 시선에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불씨가 살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상 막판 쟁점으로 떠오른 ‘부제소합의’를 미결로 남긴 탓이다. 부제소합의는 분쟁과 관련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번 파업으로 8000억 원 상당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대우조선해양의 입장이다. 이미 경찰은 원청의 고발 내용을 토대로 파업 주동자의 불법 행위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원·하청 간 노·노 갈등 봉합도 난제다. 하청노동자와 원청노동자 모두 같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소속이다. 그러나 이번 파업을 거치며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하청노조 점거 농성이 원청노조 조합원 생존권마저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원청노조는 금속노조 탈퇴를 추진하고 있다. 갈등이 격화하는 데도, 금속노조가 중재 역할을 못 했다는 이유다. 원청노조는 일부 조합원이 제기한 ‘조직 형태 변경 결의 총회 소집 요구 건’을 토대로 지난 21일과 22일 금속노조 탈퇴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전체 조합원 4726명 가운데 4225명이 참여해 투표율 89.4%를 기록했다. 3분의 2가 찬성하면 탈퇴 안건은 가결된다. 하지만 개표 직후 일부 중복투표로 추정되는 뭉치 표가 나와 잠정 중단됐다. 원청노조는 투표함을 봉인해 지역선관위에 맡기고, 휴가가 끝나면 내부 논의와 법원 판단을 거쳐 개표 재개 여부를 정할 방침이다.

한편,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23일 업무방해 등 혐의를 받는 하청노조 조합원 9명에 대한 경찰의 체포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이들이 점거 농성을 푼 데다, 경찰에 출석해 조사받겠다는 의사를 밝혀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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