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69 > 사이시옷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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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①경곳빛 뭇국 황샛과 마놋빛.

이게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보시겠는가. 아니면, 이런 말은 또 어떤가.

②경고빛 무국 황새과 마노빛.

추측하건대, 대개는 ②가 더 알아보기 쉽다고 하실 터. 하지만 사이시옷 표기 원칙에 따르면 ①이 옳다. 아래 사이시옷 표기는 옳을까, 틀렸을까.

‘갈짓자, 소싯적.’

답은, ‘반만 옳다’다. ‘갈지자, 소싯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왜 ‘갈짓자’가 아니라 ‘갈지자’, ‘소시적’이 아니라 ‘소싯적’일까.

먼저, 갈지자. 발음이 [갈찌짜]여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야 하는 조건에는 맞지만, 한자어에 사이시옷이 붙는 건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라는 두 음절짜리 6개밖에 없으므로 ‘갈지자’라야 한다.

다음 ‘소싯적’. 발음이 [소시쩍/소싣쩍]이어서,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조건에 맞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받쳐 ‘소싯적’으로 적는 것.

자, 이렇게 복잡한 규정에 따라 적어야 하는 사이시옷은, 사실 전문가가 챙기기에도 다소 벅찬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혼잣말’은 사이시옷을 받치지만 ‘인사말 머리말’은 그러지 않는다. 결국, 제대로 사이시옷을 적으려면 모든 발음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아래는 이런 사이시옷 규정에 따른 말들이다.

‘답삿길 모랫길 출좃길 하굣길/결괏값 고윳값 근삿값 기댓값 변숫값 최곳값 최댓값 최솟값 최젓값 함숫값/고깃값 비룟값 뱃값 사괏값 석윳값 신찻값 우윳값 원자잿값 채솟값 휘발윳값/며느릿감 사윗감 신붓감/태곳적/만홧가게/갯과 고양잇과 딱샛과 박샛과 솟과 황샛과/낚싯바늘 시곗바늘/공붓벌레 장맛비/나랏돈 회삿돈/막냇누이 막냇동생 막냇사위 막냇삼촌 막냇손자 막냇자식/갈빗국 돼짓국 만둣국 뭇국 시래깃국 팟국/궁둥잇짓 다릿짓 머릿짓 손사랫짓 엉덩잇짓 우스갯짓/가짓빛 경곳빛 꽈릿빛 노른잣빛 도홧빛 마놋빛 모싯빛 복숭앗빛 비췻빛 산홋빛 상앗빛 쇳빛 쥣빛 청잣빛 포돗빛.’

이렇게 복잡하고 눈에 서니 당연히 부작용이 따른다. 얼마 전까지 ‘원자잿값’으로 바로 쓰던 어느 신문이 어느 날 제목은 ‘원자재값’, 본문은 ‘원자재 값’으로 모두 잘못 썼다. 사이시옷 표기법이 복잡하니 저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신문은 〈점심 순대국에 커피 마시면 1만5000원…〉이라고 제목과 본문에 썼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사전에 멀쩡히 ‘순댓국’으로 올라 있는데도 무시한 것이다. 법이 너무 복잡하면 대놓고 어기는 일이 벌어지는 법인데, 말인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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