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77) 기록을 넘어 능동적 사유로 이끌다, 최민식 ‘부산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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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1928~2013)은 부산에서 활동하며 현실 속 구체적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온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분관이었던 용두산미술전시관에서 개최한 ‘최민식 사진:인간, 그 아름다운 이름’전을 계기로 2007년 작가의 작품 50점을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1957년부터 2006년까지 제작된 것이다. 최민식이 자신의 전 생애를 거쳐 드러내고자 했던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그로 인한 모순된 인간의 관계를 포착한 작품들이다. 제작 연대를 달리하는 사진들은 각 시대를 기록하는 사료적 가치를 넘어 현실에 대한 능동적 사유를 이끄는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부산 1974’(1974)는 국민투표를 독려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포스터가 가로로 줄지어 붙은 담벼락 아래에서 이와 무관한 듯 잠을 청하고 있는 한 노숙자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포스터는 ‘투표’는 ‘새 역사’이자 ‘잘살기’이며 ‘국민총화’이자 ‘민주중흥’임을 선전하는 있다. 노숙자는 해질 대로 해진 신발과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다. 그는 꼬질꼬질 때 묻은 옷가방을 머리에 괴고서는 벽에 걸쳐진 용도불명의 나무 구조물, 그 좁디좁은 옆면을 침상 삼아 걸터 누웠다.

국민투표가 호명하는 국민의 이미지와 현실을 살아가는 사진 속 실제 인물은 매끄럽게 대응되지 못하고 불화한다. 국민투표를 주도하는 국가의 관심과 개인의 관심이 서로 어긋나 있다. 국가가 ‘민주’의 이름으로 실현하려는 목적과 개인의 자유로움이 어딘지 불일치하는 광경이다. 더욱이 군데군데 너덜거리고 찢긴 포스터는 그 자신이 외치고 있는 힘찬 구호와 대조되며 그 의미 너머를 상상하도록 돕는다.

이 사진의 제작연도는 작품명에서 보듯 1974년이다. 1974년에는 긴급조치 1, 2, 3, 4호가 발동됐고, 2년 전인 1972년은 10월 유신이 선포되었던 해이다. 군부정권은 비상조치 발표로 민주주의 제도를 정지시키고 장기집권을 위한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군부정권은 전국에서 일어난 유신반대 시위와 유신헌법 개헌청원서명운동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긴급조치를 1974년 발동시켰다. 작품은 이런 시대적 상황을 다루며 당대 사회적 현실을 조롱한다.

50여 년 전의 이 사진이 과거의 기록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이유는 지난 50여 년간 주권 쟁취를 위한 투쟁과 그에 대한 국가적인 억압, 그리고 제도 변화가 거듭되어온 지난한 역사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현실 속에서 ‘민주’ ‘국민’ ‘국가’ ‘개인’ ‘자유’ ‘평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상상케 함으로써 유효한 비판적 지점을 갖고 있다. 자유와 평등이 불화하고 국가의 관심과 개인의 관심이 불일치하는 한, 최민식의 작품은 그가 한 장의 사진으로 포착해내려 했던 현실의 부조리함 앞으로 우리의 시선을 데려다 놓을 것이다.

강선주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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