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빈센트 반 고흐의 ‘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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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133년 전 오늘 비운의 생 스스로 마감

프로방스 밤하늘 그린 작품 백미 중 백미

빛나는 별들의 세상 꿈꾸는 마음 느껴져

짙푸른 지중해와 내륙의 석회암 산악들 사이로 구릉 지대와 광활한 벌판이 펼쳐진다. 완만한 언덕바지에는 올리브나무들과 포도 넝쿨이, 넓은 들녘에는 세이지, 로즈메리, 야생 백리향도 흔하지만 대지를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인 라벤더와 거대한 노란색 캔버스로 꾸민 해바라기밭이 장관을 이룬다. 바로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이다. 자연풍광 자체가 이렇게 그림 같아서인지 이 지역은 파리와 더불어 프랑스 근현대 미술의 진정한 산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화가들이 찾았다.

세잔은 본래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고 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며 창작활동을 했다.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는 프로방스를 빈번하게 방문하다가 결국 정착하였고 모네, 뭉크, 시냐크도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을 종종 찾았다. 그리고 고흐와 고갱도 론강이 흐르는 고풍스러운 아를에서 얼마 동안 같이 살았다. 파리는 화려하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는 다채로웠지만, 자연에 대한 조용한 관조를 원하던 세잔이나 흙내음이 그리웠던 밀레 같은 이들에게는 맞지 않은 곳이었다. 파리는 많은 화가들에게 한마디로 피곤한 도시였다. 게다가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작품 ‘비 오는 파리’처럼 음울하고 칙칙한 날씨는 마음마저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곳 프로방스는 어떠한가? 넘실대는 푸른 바다와 병풍처럼 펼쳐진 산악을 앞뒤로 하여 골짜기와 들판엔 아롱다롱 들꽃들이나 형형색색 초목들이 수놓은 듯 깔려 있고, 게다가 눈이 시리도록 화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곳 프로방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행복감이 한 몸 가득 밀려오는 것이었다.

이곳은 이렇게 찾아온 이들을 마냥 행복하게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너무 슬픈 곳이 되고 만다. 그렇게 함께 지내고 싶었던 고갱과 운치 있는 길모퉁이 노랑 집(Yellow House)에서 같이 살았음에도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고갱과의 갈등은 물론, 우울증과 광기에 시달리던 그는 1888년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스스로 왼쪽 귀를 절단하고 말았다. 이후 고갱은 떠나고 마을 사람들이 그를 ‘붉은 머리 미친 사람’이라며 민원을 넣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1889년 5월 인근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꼬박 1년을 보낸 그는 ‘노란색으로 물든 광대한 들판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말한 파리 교외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옮겨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들판에서 가슴에 총격을 가해 이틀 뒤 생을 마감했다. 그것이 1889년 7월 29일이니 바로 오늘이 그의 사후 133년째인 셈이다. 하여튼 발병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1년 수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플라톤은 병으로서의 광기도 있지만 신의 축복으로서의 광기도 있는데 사제나 철학자 그리고 시인 같은 미의 창작자들은 이런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이라고 했다. 〈광기의 역사〉를 쓴 미셸 푸코 역시 광기도 엄연한 하나의 인식 형태 즉 ‘에피스테메’라고 하였다. 광기에 대한 이런 해석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이들이 대표적으로 드는 예가 바로 고흐이다. 실로 고흐는 정신병으로 투병하는 와중에 수백 점의 유화와 많은 드로잉 등 엄청난 작품들을 양산하였다. 그러나 고흐의 글을 보면 그런 창작 행위가 신적 광기에 의한 비상한 능력의 발휘라기보다 병마와 싸우면서 이룬 놀라운 의지의 발현으로 보인다.

이런 극심한 고통에서 나온 진주와도 같은 작품 가운데 한 점을 꼽으라면 단연 그가 새벽녘에 병실 창문으로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그린 ‘프로방스의 별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를에서 그린 ‘론강 위의 별밤’도 있지만, 생 레미에 도착하여 한 달 반이 지난 6월 중순에 그린 이 작품은 이전 작품에 비해 밤하늘의 별들이 크게 그려졌고 마치 소용돌이치듯 매우 역동적으로 표현되었다. 밝은 빛의 광선들과 대조적으로 하늘로 치솟은 어두운 톤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어쩌면 화가 자신을 상징화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처지는 어두워도 그는 여전히 꿈꾸고 있고 나무처럼 저 빛나는 별들의 세계로 비상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나는 그리는 것을 꿈꾸고, 꿈꾸는 것을 그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별밤 아래 알필 산맥이 완만하게 펼쳐져 있고 예배당 첨탑이 높게 솟은 정겨운 마을이 있다. 마을은 생 레미의 전경이나 아니면 그리운 고향 풍경일 수도 있다. 별들은 하늘에서 저 홀로 빛나고 있는 게 아니라 잠들어 있는 적막한 마을 위로 휘영청 내려앉는다. 산골 마을에는 별밤만 한 축복이 없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별 보고 꿈꾸고 행복해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명의 빛들 가운데서 거의 사라진 별밤이지만, 이처럼 황홀한 별밤이 있음을 잊지는 말자. 밤이면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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