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봄날의 햇살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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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정 문화부

박은빈 주연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컷. 에이스토리 제공 박은빈 주연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컷. 에이스토리 제공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갈수록 인기다. 첫 방송에서 0.9%였던 시청률은 최신 회차서 15%까지 껑충 뛰었고, 극 중 등장한 팽나무까지 스타가 됐다.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 아이큐가 무려 164다. 한 번 본 건 죄다 기억하는 영우가 대형 로펌에 취직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매 에피소드에서 다룬다.

드라마는 담백하다. 눈물 콧물 쏙 빼는 신파적인 요소나 자극적인 장면은 이 드라마에 없다.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배우의 탁월한 연기와 섬세한 연출,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들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상과 비정상, 차별과 공정 등 이분법적인 재단 대신 접점을 찾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드라마의 인기 요소는 셀 수 없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영우를 비추는 따뜻한 ‘봄날의 햇살’들이다.

영우가 말한다. “넌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의아해하는 친구에게 영우는 로스쿨 시절부터 고마웠던 순간을 모두 기억해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넌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그런데 자세히 보면 ‘우영우’ 속 ‘봄날의 햇살’은 한 명이 아니다. 회전문을 어려워하는 영우에게 ‘왈츠 스텝’에 맞춰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준호도, 영우가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도 영우를 따뜻하게 비춘다. 영우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든든한 친구 동그라미도 그렇다.

고래를 닮은 영우는 세상에서 유영할 힘을 어쩌면 ‘봄날의 햇살들’로부터 얻는지 모른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은 영우가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던 것도, 법정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영우를 자폐인이 아닌 한 인격체로 존중한 이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들은 폄훼와 비난, 모멸 대신 인정과 칭찬, 격려의 말로 영우의 창의성과 능력을 이끌어내 실력을 발휘하게 한다. 시니어 변호사 명석이 영우에게 “이런 건 내가 먼저 봤어야 하는데 잘했다”고 하거나 “이런 건 신입 변호사들 잘못이 아니라 내 불찰”이라고 하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한 취업포털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퇴사 경험이 있는 직장인 2288명 중 52%가 회사에 정확한 퇴사 사유를 밝히지 않았는데, 숨겨진 사유 중 1위가 직장 내 갑질·괴롭힘 등 상사·동료와의 갈등이었다. 시청자들은 영우를 둘러싼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들과 ‘무해’한 영우를 보며 화면 너머로나마 편안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제작비 수백억 원대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 시대에 군소 채널인 ENA의 드라마가 날개를 달 수 있던 건 ‘사람’과 ‘인간다움’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사람을 보며 또다시 희망을 얻는다. 세상 밖으로 나온 영우가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봄날의 햇살들과 오래도록 행복하길 바라본다. 상생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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