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퇴근하면서 보니 다른 아파트 침수 시작" 발언 논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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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시절엔 "산불 나면 청와대 있더라도 헬기 타고 와야"
민주 "멀쩡한 청와대 왜 나와서 전화 지시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호우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호우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지난 8일 퇴근길에 다른 아파트들의 침수가 시작되는 것을 봤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은 9일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가족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찾았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자정께 이 반지하 주택에서 40대 여성과 그 여동생 A 씨, A 씨의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는 전날 빗물이 들이닥치자 지인에게 침수 신고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지인이 전날 오후 9시께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주택 내에 폭우로 물이 많이 들어차 있어 배수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으나 배수 작업 이후 이들 가족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날 오전 11시 40분께 사고 현장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반지하 창문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최태영 서울소방재난본부장으로부터 관련 상황 보고를 들은 뒤 "지하라도 고지대도 괜찮은데 자체가 저지대이다 보니, 도림천 범람하면 수위가 올라가 직격탄을 맞는구나"라고 말했다.

이어 "어제 엄청났던 것이, 제가 사는 서초동 아파트가 전체적으로 언덕에 있는데도 1층이 침수될 정도니"라며 "내가 퇴근하면서 보니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퇴근길에 다른 아파트 잠기는 걸 보고도 집에 갔다는 건가", "침수가 시작되는 걸 봤으면 차를 돌려야 하는 것 아닌가" 등 비판이 나오고 있다.


8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이 침수되자 운전자가 대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이 침수되자 운전자가 대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윤 대통령의 발언은 기록적 폭우에도 전날 자택에서 근무한 것을 두고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나와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 자택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통화하며 실시간으로 비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당초 윤 대통령은 전날 서울 광화문에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수해 현장을 방문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자택 주변 도로가 막혀 갈 수 없었다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방안도 검토됐으나, 한밤중 주민의 불편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신분이던 지난 3월 4일 경북 울진 산불 이재민 보호소를 방문, 자신을 응원하는 주민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청와대에 있더라도 산불이 나면 헬기라도 타고 와야죠"라고 말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재택 지시'를 계기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불필요했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윤 대통령 관련 기사 포털사이트 댓글란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SNS에는 "대체 청와대는 왜 나간거냐", "전쟁이 나도 마찬가지겠네", "재난 상황에 대통령이 재택근무를 하다니" 등 비판적인 글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야권도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은 "큰 비 피해가 우려되면 퇴근을 하지 말았어야지, 국정 운영의 의지는 있는 것이냐"며 "폭우에 출근도 제대로 못 하는 대통령에게 국민의 삶을 어떻게 맡길 수 있을까. 너무 한심하다"고 일갈했다.

당권주자인 강훈식 의원은 "일분일초를 다투는 국가 재난 상황 앞에 재난의 총책임자이자 재난관리자여야 할 대통령이 비 와서 출근을 못 했다고 한다"며 "청와대를 용산 집무실로 옮길 때 국가안보에 전혀 문제없다고 자신했던 것이 불과 3개월 전"이라고 지적했다.

최고위원 후보인 박찬대 의원은 "멀쩡한 청와대를 왜 나와서 이런 비상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고, 윤영찬 의원은 "전국에 연결된 회의시스템이 갖춰져 이동할 필요도 없는 청와대를 굳이 버리고 엄청난 세금을 들여 용산으로 옮기더니 기록적 수해 상황에서 전화로 업무를 본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이러한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어제 오후 9시부터 오늘 새벽 3시까지 실시간 보고받고 지침 및 지시를 내렸다"며 "다시 오늘 새벽 6시부터 보고받고 긴급대책회의 개최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인력이 현장 대처에 매진한 상황"이었며 "대통령이 현장이나 상황실로 이동하면 보고나 의전에 신경쓸 수밖에 없고 대처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집에서 전화로 실시간 보고받고 지시를 내린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자택 주변이 침수돼 나오지 못한 것 아닌가'라는 취재진 질문에는 "주변에도 침수가 있었지만 대통령이 현장에 나와야겠다고 했다면 나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라며 "피해가 발생하는데 경호의전을 받으면서 나가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은, 이후에도 어제 상황이라면 똑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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