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이라던 ‘영끌’ 감당불가 빚 부메랑 되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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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청년투자보고서

2년 이상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은 청년들의 취업·고용 불안을 부추겼다. 집값 상승 등 자산 거품은 이들의 절망감을 한껏 부풀렸다. 보잘것없는 근로 소득으로 답을 찾을 수 없던 청년들. 그들은 결국 영혼까지 끌어모으듯 자산을 쏟아붓고 대출까지 받아 부동산·주식·코인 등에 투자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로 내몰렸다. 결과는 참담했다. 한 줄기 빛으로 보였던 영끌과 ‘빚투’(빚내서 투자)는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돌아왔다. 〈부산일보〉는 지역 청년 2명을 통해 투자판에 뛰어든 2030세대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주식·코인 투자 32세 이민규 씨

6개월 동안 자산 4500만 원 날려

대부업 대출 6500만 원도 탕진

“영끌 투자는 투기이자 도박”

■영끌 투자는 도박판이었다

청년 이민규(32) 씨는 자신을 ‘패배자’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판에 뛰어들어 1억 1000만 원을 잃어버렸다. 10년 동안 꼬박 모은 4500만 원을 투자로 모두 잃고 대부업 대출에까지 손을 댄 이 씨는 영끌 투자를 투기이자 도박이라고 단정한다. 항우울제 약을 복용하며 까마득한 빚에 허덕이는 이 씨가 계층 이동의 꿈을 안고 투자판에 뛰어든 건 약 2년 전, 코로나19 발생 직후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와 2018년부터 김해의 한 공장 생산직 직원으로 일하던 이 씨는 2020년 8월께 주식과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공장 운영이 흔들리면서 이 씨의 고용 불안은 커졌고 집값마저 치솟자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저축은 물론 당장 일자리조차 잃을 위기였다. 투자의 시작은 주식과 코인으로 먼저 큰 수익을 낸 한 친구의 권유였다.

이 씨의 첫 투자금은 200만 원. 그는 단기간 수익을 위해 위험성이 높지만 수익성도 높은 ‘잡코인’(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을 제외한 비주류 가상자산) 투자를 선택했다. 200만 원은 며칠 새 400만 원으로 배로 불어났다. 400만 원은 또 하루 만에 550만 원으로 몸집을 불렸다. 이 씨의 월급은 세전 250만 원. 단 하루 만에 투자로 월급 절반 이상의 수익을 내자 인생 역전에 대한 이 씨의 꿈은 더욱 가까워졌다.

이 씨는 “언제 공장에서 잘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또다시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막막했을 때 투자로 쉽게 돈을 버니 이 정도면 내 집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며 “그 생각이 무너지기까지는 몇 개월도 걸리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손익을 반복하며 이 씨가 200만 원을 800만 원으로 만들기까지는 약 한 달하고 보름이 더 걸렸다. 이후 이 씨는 전액 투자로 이 돈을 불과 일주일 만에 모두 잃었고 약 10년간 모아 온 개인 자산 4500만 원이 든 통장을 투자금으로 돌렸다. 3개월 뒤 이 씨 수중에 남은 돈은 약 300만 원. 2021년 3월 이 씨는 은행과 대부업 대출을 통해 약 세 차례에 걸쳐 6500만 원을 대출받았다. 본전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과 더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헛된 믿음 때문이었다. 이 씨는 해외 코인 선물거래 투자에 손을 댔고 약 4개월 만에 대출금 대부분을 탕진했다.

이 씨는 “인생역전을 위한 아득한 꿈이 현실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며 “빚투가 답은 아니었지만 고용불안과 집값 상승, 취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코인에 주력한 31세 박상우 씨

100만 원으로 넉 달 뒤 20배 수익

이후 매주 최대 1000만 원씩 손실

“세상 쉬워 보였는데 뒤늦게 후회”

■투자로 빚 상환을…출구 없는 청년들

부산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박상우(31) 씨도 청년 투자자 중 한 명이었다. 한 달에 2000만 원의 수익을 냈을 때 박 씨는 “세상이 쉬워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랬던 그에게 남은 건 3000만 원의 빚과 알코올의존증, 우울증뿐이다. 박 씨는 빚투로 총 6500만 원의 돈을 잃고 최근까지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은행 대출로 빌린 3000만 원과 여러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개인 자산 3500만 원을 모두 주식과 코인 투자로 날렸다.

박 씨도 코로나19 발생 이후 투자에 뛰어들었다. 코로나 영향으로 저금리가 지속되자 ‘은행에 돈을 넣어 두면 손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세전 280만 원 수준의 월급을 모아 집을 사고 자산을 불리는 것도 박 씨에겐 무리였다. 그는 2020년 12월 100만 원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박 씨가 주력한 건 코인 거래였다. 100만 원으로 100만 원의 수익을 내면 200만 원 모두를 넣는 공격적인 투자 방식으로 단기간에 큰 수익을 냈다. 투자 수익금에 개인 자산을 합해 투자를 이어갔고 약 4개월 만인 2021년 3월에는 2000만 원의 수익을 냈다.

박 씨가 본격적으로 돈을 잃기 시작한 건 2021년 4월. 일주일 단위로 800만~1000만 원을 잃던 박 씨는 불안감과 오기로 은행권에서 3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잃은 돈 찾고 더 벌어 보자”는 생각으로 대출금 전부를 투자한 박 씨는 단 두 달 만에 수익금과 대출금 대부분을 날렸다.

그는 불면증과 잦은 음주로 몸까지 상할 대로 상했다. 박 씨는 “월급쟁이 청년에게는 투자가 무기이자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영끌과 빚투로 수익을 낼 땐 투자를 안 하는 사람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며 “6개월 만에 수천만 원을 투자로 날렸을 때 내가 한 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었구나 느꼈다”고 말했다.

인생역전의 기회를 품었던 청년 박 씨와 이 씨는 아직도 빚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월급의 대부분은 빚을 메우기 위해 쓰인다. 이 씨는 주말과 야간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목돈이 생기면 수시로 투자를 해, 투자로 당장 갚아야 할 빚을 상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씨는 “빚에 깔려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청년 개미 투자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며 “빚투와 영끌 투자로 인생을 바꾸겠다는 건 터무니없는 요행이란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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