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국탁구 100년과 부산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우리나라에 탁구가 도입된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건 1924년 경성일일신문사가 제1회 핑퐁대회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대한탁구협회는 이를 한국탁구의 효시로 본다. 그렇다면 2024년은 한국탁구 100주년이 된다.

초창기 한국탁구의 가장 걸출한 스타는 단연 최근항(1920~1982)이다. 그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탁구를 배웠다. 처음 출전한 1936년 제1회 전조선경식탁구대회에서 대뜸 우승하더니, 1937년 전조선탁구선수권, 1938년 전조선국제식탁구선수권 등 나오는 대회마다 정상에 올랐다. 1940년부터 진출한 일본 현지 대회에서도 적수는 없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 대회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거뒀다. 1951년 태평양연안탁구선수권에선 단식과 복식 모두 우승했다.

대회 성적의 화려함에서 최근항을 넘어서는 인물은 현정화 외엔 달리 찾기 어렵다. 고교 1학년 때(1985년) 이미 국가대표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1987년 세계선수권 복식 우승, 1988년 올림픽 복식 금메달, 1989년 세계선수권 혼합복식 우승, 1991년 세계선수권 단체전 우승, 1993년 세계선수권 단식 우승…. 현정화가 거둔 성적은 너무나 눈부셔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국제탁구연맹(ITTF)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는 부산에서 탁구의 꿈을 키웠는데, 부산 출신 스타로는 그보다 한 살 많은 유남규도 있다. 아시안게임(1986년)·올림픽(1988년)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현정화와 짝 지어 자주 거론된다. 둘은 1988년 아시아선수권, 1989년 세계선수권, 1990년 아시아선수권에서 혼합복식으로 함께 우승했다. 그렇게 보면, 최근항이 싹을 틔운 한국탁구는 부산 출신의 두 스타에게서 절정의 꽃을 피운 셈이다. 부산을 ‘한국탁구의 메카’로 부를 수 있는 근거가 거기에 있다.

마침 ‘2024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가 지난 22일 공식 출범했다. 지난해 11월 ITTF 총회에서 대회 유치에 성공한 데 따른 것이다. ITTF 회원국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보다 많은 220여 개국이고, 세계탁구선수권은 올림픽·월드컵에 버금가는 스포츠 행사다. 그래서 세계탁구선수권 개최는 한국탁구의 숙원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그것도 한국탁구 100주년이 되는 해에 부산에서 열린다. 한국탁구의 메카로서 명실상부한 일이다. 한국탁구의 과거 100년은 물론 미래 100년까지 품는 부산이길 희망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