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동백전이 시들기 전에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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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경제부 유통팀장

동백전을 참 요긴하게 쓰는 시민 중 한 사람입니다.

넉넉한 캐시백도 좋지만, 그 캐시백을 받기 위해 결제할 때마다 ‘여긴 부산에 연고를 둔 가게인가’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모인 캐시백은 부산 자본의 역외 유출을 막은 애향심에 주는 작은 포상인 셈이지요.

그랬던 동백전이 8월부터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화끈하던 10% 캐시백은 5%로 반 토막이 났고, 월 충전 한도도 30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실사용자가 1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자 발행 예산은 가을도 채 되기 전에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 슬픈 소식은 올해 600억 원 남짓했던 국비 지원이 내년 예산에서는 완전히 삭감됐다는 겁니다.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내년부터는 동백전은 시비로 발행해야 할 지도 모를 형편입니다.

부산시의회와 부산경실련이 동백전의 생존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모았지만 뾰족한 자구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장 동백전은 남구의 오륙도페이나 동구의 이바구 페이 같은 지자체 지역화폐와의 기본적인 통합 체계도 꾸리지 못한 상태니까요.

이는 국비 삭감에 대비해 대대적인 운영 개편에 들어가는 인천과는 대조적입니다. 인천은 발행 예산이 줄어들자 동일하게 지급하던 캐시백 요율을 연 매출을 기준으로 가게마다 차등지급하거나, 업주로부터 자발적인 할인을 끌어내 발행 예산을 아끼는 방식을 내달부터 점진적으로 도입한다고 합니다.

물론, 지역화폐 사업 도입이 부산보다 빨랐던 인천입니다. 위기 대응도 능숙할 수밖에 없을테지요. 하지만 도입에는 순서가 있을지 몰라도 위기에는 순서가 없는 법입니다. ‘나랏돈이 내려오지 않는다’며 통곡하며 할인 요율만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전격적으로 이뤄진 예산 삭감이지만 부산시의 반 박자 빠른 대응이 아쉽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위기의 원인은 정부의 수도권 중심적인 예산 책정입니다. 지역화폐 예산을 통째로 날려버린 배경에는 ‘지역화폐 도입으로 특정 지역의 소비가 늘어나도 국가 전체의 경제 소비 증대 효과가 없다’는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까. 수도권에 골수까지 빨리고 있는 지역에서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역내 자본이라도 선순환하도록 설계한 게 지역화폐 아닙니까. 쉽게 말해 일부러 특정 지역 소비가 늘어나도록 배려한 예산인데 이제 와서 국가 전체에 무슨 도움이 됐느냐 묻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아니, 애초부터 종전 정권의 정책이라 계승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게 더 큰 이유 아니겠습니까. 현 정부와 여당의 머릿속에서 지역화폐는 현금이나 살포하는 포퓰리즘 정책의 일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입안이야 누가 했던 시민으로부터 인정받는 정책이라면 당색을 빼고 바라볼 여유가 정부와 여당에는 필요합니다. 수도권 중심의 정책 입안으로 단칼에 날아간 지역화폐 예산을 사수하기 위해 광역지자체 간의 연대도 절실한 시점입니다. 동백전이 시들기 전까지 시간은 길지 않아 보입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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