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의 시인의 서재] 차학경의 <딕테>와 죽음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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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시와사상’ 편집위원

‘가을’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발화한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이 어휘를 누가 명명했을까? 무심코 사용하는 일상어가 기묘하게 들어맞을 때 경이롭다. 봄은 생동하는 감각이 담겨 있고, 여름은 햇살 아래에서 느릿느릿 익어 가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진 날씨와 몸의 느낌이 가을이라는 말에 스며 있다. 차학경의 〈딕테(Dictee)〉를 읽으면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차학경은 1951년에 부산에서 출생한 예술가이다. 1961년에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1964년에 샌프란시스코로, 1964년에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녀의 부모는 일제강점기에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녀는 UC 버클리대학에서 비교문학과 시각 예술로 학사 학위 두 개와 석사 학위 두 개를 취득했다.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전위적인 실험 정신을 보여 주었는데, 안타깝게도 1982년 11월 5일 뉴욕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 조지프 산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부산 출신으로 1980년대 뉴욕 이주

이방인의 삶 속에서도 다양한 예술적 성취

끝내 성폭행범에게 피살 비통한 생애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 곤경 지금도 여전

살인자는 차학경의 남편이 근무하는 빌딩의 경비원이었으며 그 이전에도 이미 9건의 성폭행으로 지명수배된 연쇄 강간범이었다.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 박 홍의 에세이집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에 의하면, 산자는 빌딩 지하 2층에서 그녀를 강간하고 곤봉으로 구타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한다.

차학경의 죽음 이후로 그녀의 사인에 대해서는 자세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녀의 뛰어난 예술적 업적이 잔혹한 사건에 의해 가려질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캐시 박 홍의 구체적인 묘사를 읽어 보면, 강간범에게 저항한 차학경의 흔적을 실제로 찾아낸 사람은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그녀의 남편 리처드였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계 여성 피살 사건에 대해 미국 경찰의 노력이 부진했다는 사실도 추측할 수 있다. 잔혹한 산자는 그녀를 죽이고 이틀 뒤 여성스러운 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었으며, 3개월 후 다른 여성 두 명을 더 강간했다.

차학경의 〈딕테〉는 아주 전위적인 서사 시집으로 읽힌다. 여성의 목소리와 가족의 이야기를 함께 녹여 내면서 영어, 불어, 한자, 사진 등을 활용해 낯선 감각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미국으로 이주해 낯선 외국어를 배워야 했던 경험 탓인지 언어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게 드러난다. 영화 촬영 기법과 연극적인 요소, 그리고 미술이 기묘하게 혼재해 그녀만의 예술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그러면서 각 장의 행간에 역사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요소가 많아 난해하지만 기이한 매력이 있어 연구자들을 매혹시킨다.

이 책의 ‘클리오 역사’라는 장에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하와이 한인들의 탄원서가 삽입된 부분이 있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8000명의 한인들이 1905년 7월 12일 민중회의를 개최한 뒤 1200만 한국 동포들의 감정을 대변한 것으로,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을 유린할 때 한국이 자주적 정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 내용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견뎌야 했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을 그녀들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사적인 가족의 서사이면서 동시에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한국의 역사를 이방인의 관점에서 극화시킨다. 한편 유관순, 잔 다르크, 소화 테레사 성녀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숭고의 차원을 보여 주기도 한다.

조국을 떠났지만 조국을 잊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형상화하는 기법이 독창적이다. 그녀는 시간에 대하여 이렇게 토로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를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시간은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는 멈추어 준다. 그들을 위해 특별히. 영원의 시간. 나이가 없는. 시간은 일부 사람들을 위해서 고정된다. 그들의 영상, 그들의 기억은 부패되지 않는다. 자신을 재생산과 번식으로, 영혼으로부터 추출된 고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그들의 면모는 성스러운 아름다움, 피할 수 없는 것이나, 죽음도 아니고 죽는 것 자체를 환기시킨다.” 그렇게 시간마저 정지시키는 영혼의 힘과 예술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온몸으로 자신의 예술에 헌신한 그녀가 참혹하게 죽은 사실이 가슴 아프다.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예술적 성취는 훨씬 더욱 확장되고 심화되었을 것이다.

최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뉴스를 보면서 여성들이 여전히 스토킹과 강간, 살해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게는 그가 연인이든 친구이든, 심지어 남편일지라도 공포를 주는 대상이 된다. 괴물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이별 후에 감행되는 보복 행위와 스토킹에 대해 피해자 여성을 보다 철저하게 보호할 법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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