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국가 리더십의 위기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리더의 말과 행동, 일관성 중요
조직과 사회, 국가 운명까지 좌우
언행에 책임지는 모습이야말로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
나라 안팎 총체적 위기의 시대
대통령 리더십 다시금 돌아볼 때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법무부·대한법률구조공단·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등 관계자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법무부·대한법률구조공단·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등 관계자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부터 난장판이다. 4일부터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여야의 충돌은 말 그대로 ‘사생결단’의 결기로 서슬 퍼렇다. 사태의 발단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불거진 비속어 논란. 이 사안만 놓고 보면 단순 해프닝 수준인데 어쩌다 이렇게 커져 버린 걸까.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리더란 무엇이며 리더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리더는 조직 혹은 사회 안에서 일정한 ‘성과’를 위해 발탁된 사람이다. 발탁이라는 말에는 주체성이 결여돼 있으니 사회와 조직을 ‘이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아무튼 조직의 목표를 위해 성과를 내는 사람이 리더다. 하지만 성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 반대편의 ‘책임’이다.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하면 리더의 자격이 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그렇다면 리더의 말과 행동은 왜 중요한가. 조직문화 전문가인 존 칠드러스의 말을 빌린다. “조직은 그 리더의 그림자다.”(〈컬처 레버리지〉) 리더의 리더십에 따라 조직과 그 구성원이 함께 움직이므로 너무나 당연한 말 같다. 하지만 여기 숨은 의미망은 결코 작지 않다. 조직원은 리더의 언행을 보고 리더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우선시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 등을 판단한다.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하고 조직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간다.

문제는 리더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잃을 때다. 구성원들은 혼란에 빠지고 조직의 앞날도 위태로워진다. 실제로 기업에서 직원들이 이직을 결심하는 가장 큰 이유로 두 가지가 있는데 상사의 ‘떠넘기기’와 ‘가로채기’라고 한다. 이중 떠넘기기는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의 전형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겉과 속이 다른 리더들의 특징이다.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의 결말은 조직 건강성의 심각한 훼손이다.

물론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혹시 조직 구성원의 문제는 없는가. 리더에 대해 반항하고 거부하는 사람, 혹은 조직의 부패와 잘못을 숨기는 사람 같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의 지혜를 경청할 만하다. “군주는 때때로 어떤 일에 미혹되거나 언론에 귀가 가려질 수 있다. 이를 조심해야 한다.” 고전 〈한비자〉 ‘남면’ 편, 곧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 범하기 쉬운 허물을 이야기한 대목이다. 말인즉슨, 아무런 근거 없이 무책임한 의견을 내는 신하들, 반대로 일신의 안녕을 도모해 어떤 진언도 하지 않는 신하들을 경계하라는 것.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된다. “신하가 의견을 올릴 때 진언한 사실과 성과가 부합하는지 살펴 칭찬과 비판을 아끼지 않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하들에게도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 더불어 중책에 있으면서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경우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 한비자는 그래야 군주가 신하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사탕발림에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군주가 독자적인 판단력과 결정권을 갖추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결국 리더는 자신의 언행에 책임져야 함은 물론 아랫사람들도 본인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도록 견인하는 사람이다. 모든 게 리더의 책임이요, 리더십의 몫이라는 뜻이겠다.

리더의 역할이 이토록 엄중할진대 한 나라의 통치권자인 대통령 자리는 더 말해 무엇하랴. 윤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이미 크고 작은 리더의 소임을 경험한 바 있다. 비속어 논란 이후 눈덩이처럼 커진 이번 사태 앞에서 먼저 지적돼야 할 것은 대통령의 대응 방식이다. 진상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당사자가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대통령이 알면서도 모른 체한 것일까? 그렇다면 떠넘기기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그걸 받아 다시 특정 언론에 떠넘겼다. 국가 리더십이 품어야 할 책임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다.

물론 대통령의 미숙함이 정치 논리나 진영 대립에 의해 과도하게 부각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는 통 큰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의를 위해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솔직해야 할 때는 솔직해야 한다.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리더로서의 진정성이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 그 정체 상태가 심상치 않다. 어쩌면 대통령실 안에 올바름을 간하는 사람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을 막는 세력이 너무 강하든가. 대통령이 자신을 엄정히 되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다시금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또 무책임한 말만 쏟아 내는 사람은 없는지, 침묵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나라가 총체적 위기 속에 처해 있다. 리더십의 기본을 되찾지 않는 한 국난 극복의 길은 요원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