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시는… 유아독존 패기로 써야 하는 것”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송랑 구연식 시인 시전집
‘영원을 넘어’ 출간
고인의 장남이 엮어내

초현실주의부터 서정시까지
폭넓은 작품 뛰어난 말 감각

동아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송랑(松郞) 구연식(1925~2009) 시인의 시전집 〈영원을 넘어〉(물망초)가 출간됐다. 구연식 시인은 부산문인협회 제7대 회장(1983~86)을 지냈으며 부산문협 사상 처음으로 경선을 치른 회장이었다. 당시 사무국장은 배익천 동화작가가 맡았다. 책을 묶어 낸 이는 고인의 장남인 구충서 씨로, 20여 년 판사로 일한 뒤 20여 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805쪽까지 매겨진 두꺼운 책에는 구 시인이 생전에 출간한 시집 6권(1962~2000)과 책으로 묶지 못한 시를 모은 유고시집을 포함해 7권 시집이 실렸고, 다른 이들이 쓴 시론 14편과, 시인 본인이 말하는 자신의 시론 10편, 그리고 앨범, 연보, 시 색인이 게재돼 있다.


시인은 초현실주의 시에서 서정시를 아우른 널따란 폭의 시를 썼다. 말의 감각이 뛰어났다. “나는 저승은 아무것도 없는 제로의 세상으로 보아 불신자가 됐다. 그렇다고 이승의 실존 세상이 월등히 나은 세상인지 알 수 없고, 검증하기도 싫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를 쓰는 것이고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는 시를 멋의 세계, 시 정신을 멋의 정신으로 말하면서 유미주의를 탐했다. 초기에 초현실주의 시를 통해 가파른 유미주의로 내달렸다. 그는 1999년 74세 때 “나는 청년이지 원로가 아니다”라고 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자, 그런 패기 없이 문학을 해서는 안 된다” “시 사후(死後)시대의 시를 써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의 말이다.


그의 시적 자전을 보면 초현실주의에서 서정시에 이른 도정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시적 충격의 맨 처음은 한국적 서정시를 개척한 미당 서정주였고, 의지적이고 지성적인 경사는 한국 쉬르(초현실주의)문학의 대표자인 시인 조향으로 인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시인은 원래 의대에 지망한 뒤 낙방해 부산 형 집에 와 있으면서 재수할 요량으로 당시 남조선대학(현 동아대)에서 영어·수학 공부에 열중하다가 미당 서정주의 시 강의를 듣고는 그만 시에 빠져버렸다. 해운대 해변 백일장에서 미당의 눈에 띄는 시를 썼던 것이 그의 시적 출발점이었다. 당시 남조선대학 문학 강의는 그 강사가 미당, 청마 유치환, 조향으로 이어지면서 빛났다. 세 사람의 영향을 받은 것이 그의 시였다. 그러나 처음은 조향이었다. 조향은 동아대 국문과를 ‘쉬르 문학’의 본산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조향의 장악력은 강했다. 구 시인의 시 ‘감각 A’에 보이는 ‘마개를 빼면/화약 냄새가 나는 지구’, ‘맥주병 안에 침몰하는 태양’ 같은 구절이 그 영향이다. 뒷날에 쓴 ‘고향 수풀 길섶에서 본/가을 秋(추)자 닮은 귀뚜라미가/달에 붙어간다’(‘구덕산의 귀뚜라미’) 같은 구절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쉬르 문학 동인지 〈가이거(geiger)〉(1956) 〈일요문학〉(1963)에 참여한 것도 조향에 이끌려서였다. 당시 청마를 비롯해 부산문단에서 “초현실주의 문학인가 무언가 하는 사람이지”라며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은 쉬르문학 자체가 아니라 조향을 겨낭한 말이라는 걸 구 시인은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조향은 시가 아니라 행위적 측면에서 당시 부산문단에서 문제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아대 문파’라 할 정도로 동아대 출신 시인들은 대체로 모더니즘에 많이 경사하는데 처음을 정초한 시인이 조향이었고, 그다음을 구연식 시인이 이었던 것이다. 그는 모더니즘 시 연구도 했다.

그러나 후기로 오면서 시인의 시는 서정시로 회귀했다. 그는 “내 시의 오아시스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조화하려는 곳에 있다”고 했다. 보수동 산복도로에 살았던 그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두어 시간 구덕산 산행을 했다고 한다. 함안 출신의 문덕수 시인은 구 시인의 시를 두고 “사물세계의 마력을 지닌 시”라고 했고, 부산의 최휘웅 시인은 “순수 절대의 시”라고 했다. 전집을 묶은 장남은 “시인 아버지가 나에게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며 “선친을 생각하며 눈시울 붉어지는 일이 자주 있었음을 고백한다”고 적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