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89. 두 개의 액자-정교하게 설계된 시각 구조, 박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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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하는 사각 형태의 구멍 덕에 여행용 가방은 마치 액자 같다. 하늘색을 배경으로 구름이 구멍 뚫린 가방의 안팎을 가득 메운다. 이렇게 하늘을 무대로 한 ‘가방극장’ 안에는 한 쌍의 작은 남녀가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다소 ‘둥글둥글’ 단순하게 조형되고 회색조로 칠해져 인위적인 느낌이 난다.

어깨가 벌어져 다부진 느낌의 남성은 턱을 뒤로 당기고 꼿꼿이 섰지만, 슬쩍 앞으로 나온 양손은 눈앞의 여성을 향한 기대감을 은근슬쩍 내비친다. 여성 역시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양손을 앞으로 모아 붙잡으며 감정을 절제하는 것 같다. 사연이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가방극장’에는 두 개의 액자가 있다. 감상자 쪽에서 가까이 보이는 첫 번째 창 때문에 감상자는 허구적 상황으로서 가방 속 커플의 상황을 관전할 수 있다. 허구 세계에 나 있는 또 하나의 액자는 실제 현실을 반영한다. 만약 작품의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이 가방을 본다면 관람객끼리 서로 눈을 마주칠 것이다.

두 개의 액자 구성은 시점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림 밖에서 그림을 보는 동시에 그림 안의 배경이 될 수도 있다. 그림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창인 동시에 현실을 보기 위한 창일 수도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소장 중인 이 작품은 1985년에 제작된 조각가 박선(1947~)의 ‘여행’이다.

박선은 1980년대 초반 미국 뉴욕 유학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작가는 추상미술 일색이던 화단에 특유의 스타일을 통해 형상을 복귀시켰다.

여행가방, 우유팩, 안경 등 비전문가적 일상 사물이나 남녀 간의 ‘할리퀸 로맨스’는 박선이 즐겨 사용하는 재료로, 대중의 꿈은 현실과 나란히 교차한다. 그중에서도 ‘여행’은 정교하게 설계된 시각 구조 속에 통속적인 꿈과 이야기를 녹인 의미 있는 초기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안대웅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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