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의 지발도네(Zibaldone)] BTS와 새로운 예술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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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귀국하는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공교롭게도 날짜가 방탄소년단(BTS) 공연과 겹쳤기 때문이었다. 10대의 나이로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가족 동반이었다. 자녀 한 명이 온 가족을 끌고 한국행에 나선 셈이다. BTS의 공연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어떤 ‘효과’를 만들어 내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신기했다. 이런 대중 동원의 힘이 BTS에 대한 정치인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것일 테다. 오늘날 정치인들의 라이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근대 세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대중’의 등장을 지목하면서, 예술작품의 조건이 ‘아우라’에서 ‘정치’로 바뀌었음을 강조했다. 이 추상적인 분석이 오롯하게 실감을 획득하는 지점이 바로 ‘BTS 현상’ 같은 대중문화의 역동성일 것이다.

오늘날 모든 분야의 성공 기준은 ‘시장’

빅데이터 발달로 통계 숫자로 환원

K팝 ‘음악보다는 스타를 파는 시스템’

첨단산업 아닌 노동통제 방식 무한반복

물론 모더니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대중문화는 예술로 분류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냐민의 말이 옳다면, 대중의 환심을 사야 하는 근대 이후의 예술은 모더니즘의 이상이 새로운 조건을 넘어서기에 역부족이란 사실을 새삼 확인시킬 뿐이다.

비단 예술뿐만 아니다.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성공’의 관건은 ‘국가’냐 ‘시장’이냐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둘 중 하나에서 ‘반응’이 온다면 그가 누구이든 개인은 ‘영향력’을 획득한다. 이 영향력이 곧 ‘권력’이다. 그래서 요즘은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유행이겠지만, 역설적으로 이들만큼 또 대중의 영향을 받는 존재들도 없을 것이다.

근대 이전이나 민족국가 건설이 정언명령이었던 시절에 국가는 유일무이하게 대규모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대의였다. 그러나 시장 논리의 확장은 이런 국가를 유연화했고, 국가조차 시장의 동향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물론 이런 국가의 퇴거 과정을 ‘민주화’로 볼 수 있음을 한국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그러나 ‘민영화’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런 사정이 반드시 정치적으로 옳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님을 또한 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하튼, 막연하게 입에 오르내리는 “시장 논리”라는 말의 의미는 사실상 ‘통계에 근거한 숫자’를 의미한다. 이 통계의 결괏값이 대규모로 축적되면 ‘빅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이 대량의 데이터를 집적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이 베냐민이 통찰한 근대 예술의 조건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인간 행동이 숫자로 환원되는 것이 이 새로운 조건의 의미이다. 이 숫자 중에서도 가장 대중의 실체를 잘 가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다름 아닌 ‘정보 검색’과 ‘물건 구매’일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항상 하고 있는 두 행위가 실질적으로 빅데이터 산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천연자원이다.

한국의 대형 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본인 자신이 가수이기도 한 박진영은 10여 년 전에 영국의 한 매체와 이루어진 대담에서 “K팝 산업은 음악을 팔지 않고 스타를 파는 시스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그는 대중이 더 이상 ‘음반’을 사지 않고 ‘음원’을 내려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던져 준다. 내 방식대로 말하자면, 음반을 사는 행위보다 음원을 내려받는 행위가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생산한다.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투자 리스크가 크다고 알려진 대중문화 산업을 예측할 수 있는 알고리즘의 구축이 그만큼 더 용이해진 것이다. 박진영이 말한 ‘스타를 파는 시스템’이라는 것은 문화산업 자체를 포디즘(Fordism·대량생산 체제)적인 공장으로 만드는 전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음악을 관리하긴 어렵지만 스타를 관리하긴 쉽다. 생산력을 관리하기 위해 공장이 취하는 방법은 바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통제’이다. 박진영의 ‘스타를 파는 시스템’이란 결국 인간 노동의 ‘잉여성’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는 고전적 자본주의 축적 방식의 귀환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히면 스스로 내적 논리를 뒤집어 버리는 자본주의의 자기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무한한 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하고 단편적인 관점이다. BTS는 한국 문화산업의 최고 단계에서 나타난 상품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상품을 만들어낸 그 시스템은 우리의 상상과 달리 ‘첨단 산업’의 결과가 아니라 잉여노동을 짜내는 그 원시축적의 반복에 있다. 결국 자본주의의 생산이란 것은 이 무한 반복의 메커니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의 스타 산업은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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