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선한 영향력’ 진주 남성당한약방 보존 결정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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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폐업한 남성당한약방 건물 보존 결정
지역 역사 남기고 후원문화 정착 활용 취지
1층 한약방 보존…2~3층 교육·체험공간 검토

지난 5월 말 폐업한 진주 남성당한약방. 김현우 기자 지난 5월 말 폐업한 진주 남성당한약방. 김현우 기자

경남 진주시 지역사회의 든든한 후원처였던 남성당한약방 건물이 보존된다. 최근 진주시가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해왔던 김장하(78) 선생을 만나 건물 매입을 허락 받았다. 올 5월 30일 시민들의 아쉬움 속에 폐업한 남성당한약방을 앞으로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김장하 선생은 1963년 사천시 용현면에 첫 한약방을 열었고, 10년 뒤인 1973년 지금의 위치로 자리를 옮겨 남성당한약방을 개업했다. 질 좋은 한약을 저렴하게 팔아 한약방은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경남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약을 사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 수입 대부분을 자신이 아닌 지역사회 후원에 썼다.

유년시절 가난 탓에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던 선생은 1984년 사비를 들여 진주 명신고를 만들었고, 1991년 아무런 조건 없이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해마다 15명의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어려운 학생을 돕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경상국립대 남명학관 신축을 도와 남명학 연구에 불을 붙였으며, 대학 발전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1984년 개교한 진주 명신고등학교. 김현우 기자 1984년 개교한 진주 명신고등학교. 김현우 기자

또 문화와 역사, 언론을 통해 지역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했던 개인과 단체들도 오랜 기간 후원해왔다.

1990년 진주신문을 발간해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고, 진주문화연구소와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지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데 이바지했다.

1992년에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결성을 주도해 형평운동을 알리는 데 힘썼다. 지역의 문화유산인 진주오광대 복원과 남명학·진주솟대놀이 재조명에도 선생의 후원이 뒤따랐다.

선행을 이어온 선생이지만 결코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남성문화재단 해산 이후 현금 6억 5천만 원과 주식 28억여 원어치를 모두 경상국립대에 기탁한 사실도 대학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남성문화재단 재산을 모두 경상국립대에 기부한 김장하 선생. 경상국립대 제공 지난해 12월 남성문화재단 재산을 모두 경상국립대에 기부한 김장하 선생. 경상국립대 제공

본인은 한평생 자가용 한 번 사질 않았고 한약방에서 집까지 걸어다녔다. 국외 여행이라고는 2005년 헤어진 형을 찾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게 전부다.

자신의 신념이자 철학인 ‘돈은 똥과 같다.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 주변에 나누면 사회에 꽃이 핀다’를 묵묵히 실천해 온 것이다.

남성당한약방이 폐업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한약방 보존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한약방을 남겨 그 의미를 되새기고, 후원문화 정착에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진주시 역시 이에 공감하고 매입에 나섰지만 김장하 선생의 반대로 난항을 겪었다.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데 부담을 느꼈고, 혹시라도 기념관이 만들어질까 우려한 것이다.

선생이 마음을 돌린 건 지난 19일이다. 조규일 시장이 직접 선생을 만나 설득했고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남성당한약방 내부 모습. 김현우 기자 남성당한약방 내부 모습. 김현우 기자

시는 일단 1층 한약방은 그대로 보존하고 2~3층은 강의실 등 교육·체험 공간으로 구상하고 있다. 선생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전문가에게 맡겨 활용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진주의 한 시민은 “최근 들은 소식 가운데 가장 훈훈하고 좋다”면서 “한약방 폐업 때 정말 아쉬웠는데 잘 보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장하 선생에게 도움을 받았던 시민단체 관계자 역시 “진주의 역사 가운데 하나인 남성당한약방이 보존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며 “앞으로 한약방 건물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같이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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