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최악의 선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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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라 조르던 때가 있었다. 할머니는 이미 했던 이야기를 주로 반복했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이다. 할머니의 길고 긴 인생은 그야말로 ‘선택의 여정’이었다. 할아버지와 결혼하기로 선택하고, 자식을 낳고, 이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무수한 선택이 모여 인생이 된 것 같았다. 성인이 되고 선택의 무게를 조금씩 배우면서, 숱한 결심을 한 할머니가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던 와중에 요즘 마니아층 사이에 엄청난 찬사를 받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게 됐다. 그동안의 선택지들 중 버려진 선택지를 택한 ‘나’가 우주 어딘가 각각 다른 나로 살고 있다는 세계관의 멀티버스(multiverse·다중 우주) 영화다.

삶이란 다양한 선택의 결과물

그 어떤 인생도 '최악'은 없어

단 하나의 관점으로 재단 안 돼

수만 개 우주 속 수만 개의 ‘나’

최근 멀티버스 영화 ‘에브리씽…’

젊은 층에 던지는 메시지 묵직

이 영화에는 이민자 신분으로 미국에서 빨래방을 운영하는 평범한 여성 ‘에블린’(양자경)이 등장한다. 그녀는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수백만 가지의 에블린 삶 중에 가장 형편없고 최악의 선택만 반복해 온 힘없는 사람이다. 역설적이게도 최악의 에블린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그녀를 히어로로 만든다. 영화는 그 과정을 유쾌하고 신선하게 그린다.

알고 보니 결혼하지 않은 에블린은 결혼한 에블린보다 돈도 잘 벌고 유명했다.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멋지게 기자들 앞에 서기도 하고,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기도 했다. 요리 기술을 연마해 셰프가 된 에블린도 있었다. 수많은 에블린들이 등장할 때마다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수많은 결정을 내린 만큼 버려진 선택지에 대한 아쉬움도 많아 보였다. “그때 미용 기술을 끝까지 배웠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되풀이하던 할머니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할머니에게도 다른 선택을 한 할머니들이 우주 어딘가에 있다고 상상해 보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가 가장 고생스럽고 힘들게 사는 선택을 한 할머니 버전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만 끝나면 영화가 슬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에블린은 다양한 에블린의 능력과 교신해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되지만 그녀는 사람을 해하거나 큰 권력을 갖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족을 지키고, 다정함을 잃지 않고, 옆 사람을 위로하는, 어쩌면 최악의 에블린만이 줄 수 있는 따스함으로 혼돈을 이겨 낸다. 최악의 선택만 해 오던 에블린이지만, 그래도 그 선택들이 그녀에게는 항상 최선이었음을 증명하는 여정을 영화는 매우 감동적으로 표현해 냈다.

또 이 영화는 능력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 준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 2020~21년도에 반수나 편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물론 최선을 다해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는 수고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조금만 더 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다른 선택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에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친구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의 결정을 의심하고 고민하는 때가 나 역시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영화는 적어도 “너의 선택이 옳아. 너는 최고의 너야”라고 말해 주는 듯했다.

영화 속 에블린은 최악의 에블린으로 묘사됐지만 그녀는 결코 최악이 아니었다. 능력이나 명예, 경제력을 우선시하는 에블린이 사회적으로는 더 성공했을지 몰라도, 사랑과 우정을 먼저 생각한 지금의 에블린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어 보였다. 에블린의 가치관으로 볼 땐 최악이 아닌 최선의 에블린인 것이다. 사람의 인생은 능력치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걸 영화가 깨닫게 해 주었다.

선택은 종종 후회도 남긴다. 할머니의 한탄만 들어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할머니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에는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의 가치관이 녹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마치 에블린을 보듯이 말이다.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에블린은 궁극적으로 자신과 가족을 지켜 내는 데 그 힘을 사용했다. 악의 존재를 물리치는 기존 히어로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악인으로 표현되는 존재를 끌어안아 주려고 했다. 오랜만에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언제나 최선의 나라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어도, 더 큰 회사에 취직하지 못했어도, 큰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수만 개의 우주를 유영하는 수만 개의 ‘나’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나’라는 것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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