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90. 백양다방의 양(羊) 할아버지, 김남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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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배(1904~1991)는 부산미술 1세대 서양화가로, 부산화단 형성 시기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경남 김해 출신으로 진주사범학교 졸업 후 부산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부산은 1876년 개항을 시작으로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1920년대 일본인 서양화가들이 부산·경남 지역의 도화(미술) 교사로 부임해오면서 서양화 교육이 시작되었다. 부산 거주 일본인 서양화가들의 다양한 미술 활동과 부산 출신 작가들의 ‘조선미술전람회’ 입상 영향 등 부산 지역은 서양미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김남배는 부산 최초의 서양화 동인 그룹인 ‘춘광회(春光會)’를 비롯해, ‘경남미술연구회’, ‘혁토사(爀土社)’ 등의 미술 동인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 ‘부산미술전람회’와 같은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몇 안 되는 부산 화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가들이 한국 미술계를 주도하는 상황 속에서도 양달석, 서성찬, 우신출 등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하며, 부산 근대화단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해방 이후 부산진역 근처에서 ‘백양(白羊)다방’을 운영하며 부산·경남 미술인들이 모여 교류하는 만남의 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3·1절 기념 미술전, 혁토사 동인전, 부산미술협회 초대전 등 크고 작은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김남배가 운영했던 다방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양을 소재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려 ‘양 할아버지’로 불렸다. 어느 때보다 힘들고 혼란스럽던 시기에 그는 동물·풍경·인물의 모습을 순수하고 평화롭게 화폭에 담았다.

김남배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가 공존하는 화풍을 구사하면서 서양화를 제작하였으나, 1950년대 후반부터는 수묵화에 몰두하며 유화와 수묵화를 병행했다. 1963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제작을 했으나, 국내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훗날 2012년 부산시립미술관 기획전 ‘부산 작고작가전-김남배’를 통해서 미국 체류 시기의 작품 일부가 공개되었다.

김남배는 전시에 작품을 출품할 때 양 그림을 한두 점이라도 꼭 포함할 정도로 양 그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도 양 그림이었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양’(1946)은 한가롭게 서 있는 양들의 모습을 목가적인 풍경으로 그렸다. 마치 작가의 온화하고 공손한 성품이 반영되어있는 듯한 양의 모습은 지극히 평화로워 보인다. 같은 시기에 다른 작가들이 향토적인 소재로 ‘소’를 채택한 것에 비해 김남배는 ‘양’을 선택한 점이 흥미롭다.

조민혜 부산시립미술관 기록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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