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셋업 범죄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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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보증을 잘못 서 빚더미에 앉은 어느 시골 형사. 빚 갚느라 결혼 10년이 지나도록 신혼여행도 못 갔는데, 우연한 기회로 필리핀으로 가족여행을 가게 된다. 즐거운 한때도 잠시, 형사는 현지 범죄조직의 함정에 빠져 졸지에 살인 용의자가 되고, 여행은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악몽이 된다. 영화 ‘국제수사’(감독 김봉한)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영화 속 형사는 이른바 셋업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이다. 여기서 셋업(set up)은 ‘모략’ 또는 ‘함정에 몰아넣는 행위’를 뜻한다. 무고한 사람을 조작된 특정 범죄 상황에 휘말리게 해 범죄자로 꾸며 내는 짓이다. 마약이나 총기 같은 불법 물건을 대상자의 가방에 몰래 넣어 놓고 체포한다거나, 관광객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뒤 현장을 덮쳐 금품을 요구하며 협박하는 일 따위가 셋업 범죄의 전형이다.

셋업 범죄에 당한 사람은 억울하지만, 범죄 행위 자체는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범죄자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 주로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많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다. ‘정말로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겠지만, 해마다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등 실제 발생 빈도는 낮지 않다고 한다.

최근 필리핀에서 한국인 사업가에게 성매매 누명을 씌운 뒤 금품을 뜯어낸 피의자가 현지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되는 일이 있었다. 관련해서, 경찰은 해외에서 한국인을 표적으로 삼는 셋업 범죄가 근래 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동안 뜸하던 셋업 범죄가 근래 국외 관광이 재개되면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당국에서 셋업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여행 시에 항상 낯선 사람을 조심하고 소지품과 개인정보를 철저히 관리하라는 등 예방책을 알리고는 있지만, 셋업 범죄는 고의로 피해자를 함정에 빠트려 죄를 씌우는, 대단히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벌어지기에 상황을 모면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경찰 등 현지 공권력이 공모한 경우에는 빠져나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모처럼의 여행이라며 해방감에 경계심마저 늦췄다간 자칫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낯선 관광지에서 멋진 이성을 소개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서라, 말아라, 꿈도 꾸지 말지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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