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무고죄’ 직접 수사… 억울한 피해자 줄어들까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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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무고 사건 증가 추세
2020년 4685건 4년 새 29%↑
검찰 송치 안 되면 기소 불가
법무부, 수사개시규정 개정
피해자, 형사소송 기회 ‘희소식’
“무분별 고소·고발 감소 기대”

검찰. 연합뉴스 자료사진 검찰. 연합뉴스 자료사진

A 씨는 내연남 B 씨가 ‘빌려 간 돈을 갚으라’며 소송을 걸자 나름의 묘안을 생각해냈다. 허위사실로 B 씨를 경찰에 신고하기로 한 것이다. A 씨는 B 씨가 ‘내연관계를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면서 여러 차례 자신을 성폭행하고 강제로 연대보증을 서게 했다고 주장했다.

A 씨의 거짓말은 재수사에 나선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송봉준)가 두 사람이 합의 하에 성관계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하면서 드러났다. A 씨는 눈앞의 증거에 무고죄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이 무고죄를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수사개시규정이 개정되면서 그간 횡행했던 무고죄가 제대로 사법기관의 심판을 받게 될 거란 기대가 커진다.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우리 사회에서 무고죄에 대한 처벌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무부는 올해 9월 일명 ‘검수완박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에 맞춰 무고·위증 등 사법 질서 저해 범죄나 개별 국가기관이 법령에 따라 검사에게 고발·수사 의뢰하도록 한 범죄를 ‘중요범죄’로 분류해 검사가 직접 수사에 착수할 수 있게 했다. 종전까지는 검경 수사권 조정 여파로 검찰은 오직 경찰에서 송치 받은 무고 사건만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대검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의 무고 인지 수사 건수는 194건으로, 전년 670건 대비 약 71% 감소했다. 반면 경찰청범죄통계를 통해 확인된 무고 사건 건수는 2016년 3617건에서 2020년 4685건으로 늘어 사회 전반의 무고 범죄는 증가 추세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무고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지 않으면 기소가 불가능해 피해자는 형사소송으로 법적 다툼을 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결국 무고 피해자들은 최후의 보루로 민사소송에 매달려야만 했다. 더욱이 검수완박법 영향으로 음해성 허위 고소가 더욱 남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법무부가 수사개시규정 개정을 통해 무고죄를 검찰 수사 범위에 포함시켰다.

법조계에서는 무고죄를 검찰이 다시 수사할 수 있게 되면서 억울한 일을 겪는 시민들이 줄어들 것이라 기대한다. 묻힐 뻔한 무고죄가 검찰 수사로 드러나는 사례들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강상묵)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경찰관이 자백하라며 폭행했다”고 주장하는 절도 피의자의 무고죄를 밝혀내기도 했다.

부산의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무고죄라는 건 무혐의로 판단된 사안일 확률이 높은데, 경찰이 무혐의 사건은 검찰에 송치하지 않기 때문에 검사가 무고로 의심되는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예전부터 경찰은 명시된 범죄 혐의 여부를 밝혀내는 데 집중하지, 무고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인력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며 “무고죄를 엄중하게 다스리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우리나라처럼 고소, 고발이 남발되는 사회에서 억울한 피해자와 불필요한 사법 행정력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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