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여행가방 끌고 공연 보러 오는 관객도"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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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취임, 내년 연말까지 임기
"도시 닮아 시원하고 강한 사운드
화려하고 멋스러운 그루브 개성"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정대현 기자 jhyun@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정대현 기자 jhyun@

취임 6년차, 올해 부산시향 창단 60주년 그리고 내년 제600회 정기연주회.

최수열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근황에는 숫자 6이 연이어 등장한다. 시향은 지난 2일 창단 60주년 기념 연주회 ‘회갑(回甲)’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2017년 9월 부산시향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최 예술감독은 내년 연말 부산시향과의 인연을 매듭짓는다.

“재위촉의 경우 임기가 2년 이내로 돼 있습니다. 올 9월부터 2024년 9월까지 2년 재계약이 가능했지만, 내년 연말까지만 있기로 했습니다.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오래 생각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9개월이라는 시간을 포기한 것은 준비된 결정이라고 했다. 그는 취임 후 부산시향의 연간 프로그램을 매년 제시해 온 것을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이 때문일까. 2024년의 프로그램은 후임 예술감독을 위해 온전히 비워두기로 결심한 듯했다.

“처음 취임했을 때 창단 6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오케스트라가 연간 프로그램을 내지 않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탓에 공연 환경 변화가 심했던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프로그램을 제시한 것 말고는, 매년 연간 프로그램을 내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지난 9일 공개한 내년도 부산시향 프로그램에는 그가 지휘하는 총 6번의 정기연주회와 객원 지휘자가 이끄는 5번의 연주회 일정이 담겼다. 특히 내년 6월에는 제600회 정기연주회라는 기념비적 행사도 포함돼 있다. 최 예술감독은 그가 지휘하는 6번의 연주회의 테마를 ‘식스 라스트 워크스’(6 Last Works)로 잡았다.

“그동안 안 했던 작품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니, 말러 교향곡 9번이나 브람스 교향곡 4번 등 각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을 제가 주로 고르고 있더라고요. 하나하나 마침표를 찍는 기분으로, 마지막 여섯 차례의 정기연주회를 준비하려 합니다.”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정대현 기자 jhyun@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정대현 기자 jhyun@

내년 6월 16일로 예정된 부산시향의 600회 정기 연주회는 말러 교향곡 제9번으로 장식한다. 그동안 시향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자축하는 의미에서 협연자 없이 오롯이 시향만의 소리를 들려주기로 했다.

“부산시향의 소리에는 개성이 있습니다. 부산을 닮아 시원시원하고 강한 사운드죠. 제가 ‘뽕끼’라고 표현하는 멋스러운 그루브도 있습니다. 촌스러운 게 아니에요. 언어처럼 특정한 멜로디 라인, 습관 같은 게 있어요.”

2017년부터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전곡, 2020년부터 라벨의 관현악곡 전곡 연주에 도전한 것도 부산시향의 색깔에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산시향의 또 다른 개성으로 ‘화려함’을 꼽으며 “슈트라우스나 라벨의 음악처럼 화려한 옷을 걸쳐주는 게 잘 어울린다”고 표현했다.

최 예술감독은 “악단도 도시를 닮는다”며 “이 도시를 만난 게 축복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이하게 부산을 ‘콤플렉스가 없는 도시’라고 평가했다.

“제가 부산 시민으로서도 6년차잖아요? 그동안 느낀 게 이 도시는 묘한 자부심이 있어요. 막연히 서울을 동경하거나 하지 않아요. 개방돼 있고,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도 텃새가 없어요. 아닌 건 아니고, 맞는 건 맞고. 이성적이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있죠.”

그는 내년 연말 이후 부산시향을 떠나는 것도 아쉽지만, 부산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아내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에서의 생활은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3년 전부터는 시향 공연을 보러 여행가방을 끌고 오는 관객들도 생겨나고 있어요. 10명 중의 1명쯤은 부산시향의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을 찾은 것일 테고, 나머지 9명은 여행을 온 김에 시향 공연을 보러온 것이라 생각해요.”

그는 클래식 음악을 일종의 기호품이라고 했다. 어쩌면 시향의 존재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일부 시민,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최 예술감독은 더 많은 시민을 찾아가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알리고 음악이 주는 힐링, 치유의 힘을 공유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저렴하면서도 질 높은 공연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시향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수천 명의 시민을 모실 수 있는 무료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대나 음향, 기획 등 결국 다 예산의 문제가 걸려 있어서 쉽지가 않지요. 내년 연간 프로그램을 보시면 5월 스케줄은 비워뒀습니다. 가능하면 어린이날을 비롯한 가정의 달 5월에 찾아가는 대시민 공연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부산시향이 시민에게 받은 것을 되돌려드리는, 일종의 환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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