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영국 경제, 새 증세·긴축 정책 ‘약효’ 먹힐까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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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감세안, 금융시장 대혼란
수낵 총리, 강도 높은 예산안 발표
공공지출 삭감 등 포함 긴축 기조
인플레이션·경기침체 잡기 총력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16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16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대규모 감세안으로 금융시장 대혼란을 불렀던 영국이 심사숙고 끝에 새 예산안을 내놓았다. 리시 수낵 총리가 그간 강조해온 증세·긴축 위주의 계획이 발표된 가운데 영국 정부가 이를 통해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초래한 금융 혼란을 수습하고 인플레이션·경기침체에 대응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영국 정부는 17일(현지시간) 세금을 늘리고 공공지출을 삭감하는 내용의 예산안을 발표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내놓았다. 영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11.1% 올랐는데 이는 1981년 10월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9월(10.1%)보다도 1%포인트(P) 더 올랐으며 로이터통신이 예측한 전문가 예상치(10.7%)도 웃돌았다.

또 영국은 앞서 트러스 전 총리 당시 시장 상황과 역행하는 450억 파운드 규모의 감세 조치로 금융시장의 대혼란을 불렀다. 파운드화 가치와 국채 가격이 폭락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취임 44일 만에 트러스 전 총리가 사임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지난 14일에는 ‘유럽 최대 증시’ 자리도 프랑스에 내주게 됐다. 프랑스 주식시장 전체 시총이 2조 8230억 달러(3722조 원)를 기록해 영국(2조 8210억 달러)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최근 일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영국의 긴축 정책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더불어 이번 예산안에는 약 550억 파운드(87조 원)의 재정 구멍을 메꿀 방안도 담겼다. 외신을 종합하면 영국 정부는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 부과, 소득세 구간 조정 등으로 세금을 늘려 31조 원가량을 충당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 15일 일찌감치 발전사 초과 수익의 약 40%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횡재세는 발전사가 메가와트시(MWh)당 일정 가격 이상으로 벌어들이는 초과수익에 대해 적용될 전망이다.

나머지 재정 구멍은 지출을 줄여 메꿔야 하는 상황으로 의료, 복지, 교육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분야보다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손볼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철도, 의료 등 공공부문 노조들은 파업을 결의하며 긴축 기조의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앞서 헌트 재무부 장관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강력한 긴축 정책에 따른 저소득층 피해를 막기 위한 정책도 함께 발표했다. 생활 임금을 시간당 9.5파운드에서 10.4파운드로 10%가량 올리고 연금을 비롯한 복지혜택을 물가상승률에 맞춰 키우는 방안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저소득층 대상의 에너지 비용 지원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예산안에는 수낵 총리 내각뿐 아니라 보수당의 앞날까지도 걸려 있다. 보수당은 잇단 총리 낙마로 ‘조기 총선’ 요구를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사이에서 균형잡힌 긴축 정책을 펼치지 못할 경우 또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실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이달 초 영국의 경기침체가 2024년 중반까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1920년대 이후 가장 긴 기간이다. 보수당 내부에서도 당 정체성과는 다른 세금 정책 등을 두고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와 수낵표 예산안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에 의견이 분분하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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