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춘향가 7시간 들으니… “판소리 ‘귀명창’ 인증합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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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소리광대 Ⅱ’
신진원, 동초제 ‘춘향가’ 완창
“청중도 작정하고 들어야 완성”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진원 소리꾼.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진원 소리꾼.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16일 7시간짜리 판소리 ‘춘향가’ 완창을 들으러 간다고 하니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긴 사설을 외우려면 힘들 텐데 프롬프터 모니터라도 보고 합니까?” “오후 2시에 공연을 시작해 7시간이면 밤 9시가 될 텐데 간단한 요깃거리라도 챙겨 가야 하나요?”

이런 사소한 의문을 가져야 할 만큼 판소리 완창은 부산에선 흔치 않는 무대다. 국립부산국악원이 지난 13~16일 예지당(소극장)에서 나흘에 걸쳐 ‘소리광대 Ⅱ’라는 제목의 성악단 정기공연을 하면서 신진원(2014년 입단) 소리꾼의 동초제 이일주 바디 ‘춘향가’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같은 기간 ‘만정제 흥보가’(조수황·2시간 30분)와 ‘보성소리 심청가’(정윤형·4시간 30분)도 완창했다.

먼저 완창의 의미부터 짚어 보자.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완창(完唱)을 찾아보면 “판소리가 절멸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으나, 후에는 판소리를 공부하면서 자신이 공부한 것을 하나씩 선보이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로 나와 있다. 2008년 개원한 국립부산국악원에서도 ‘춘향가’ 완창은 처음인 만큼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할 만하다. 신진원에 따르면 이날 ‘춘향가’에는 노래만 100곡 가까이 포함됐다.

그렇다. 판소리는 한자리에서 다 부르기엔 너무 길다. ‘춘향가’처럼 완창에 일고여덟 시간이 걸리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한편으론 판소리는 부분만을 따로 떼어 부르거나 중간중간 몇 대목씩 건너뛰고 부를 수도 있는 예술이기도 하다. ‘춘향가’만 하더라도 부분으로 공연되는 눈대목(하이라이트)이 몇 장면 있다. ‘십장가’나 ‘어사출도’ 대목이 대표적이다. ‘사랑가’나 ‘쑥대머리’도 유명하다.

동초제 '춘향가' 완창 공연 중 2부 순서를 마친 뒤 20분 휴식을 안내하는 해설자.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동초제 '춘향가' 완창 공연 중 2부 순서를 마친 뒤 20분 휴식을 안내하는 해설자.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이날 공연은 3부로 나눠서 진행됐다. 해설자가 있고, 소리꾼은 2시간 정도 소리하고(1부) 15분 쉬고, 다시 2시간 정도 소리하고(2부) 20분을 쉬었다가 마지막 3부를 진행했다. 20분 휴식 땐 국립부산국악원이 준비한 떡과 약과를 관객도 나눠 먹었다.

공연 도중 목이 마르면 소리꾼과 고수는 물을 마셨다. ‘춘향가’ 사설에는 안 나오는 소리꾼 자신의 이야기도 간간이 곁들였다. 예를 들면 “제가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소리를 시작해서 27년간 해 오면서 정말 다행인 건 소리를 놓지 않고 꺾이지 않은 마음”이라고 고백하거나 “소리 연습을 한다고 국악원 귀신마냥 맨날 혼자 지낼 때도 있지만, 오늘은 온전히 저만 바라봐 주시려고 온 거니까 부족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궁금해하던 프롬프터 모니터는 없었다. 오히려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춘향가 사설집을 미리 나눠줬다.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진원 소리꾼 커튼콜 장면. 무대도 연행자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병풍마저 없앴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진원 소리꾼 커튼콜 장면. 무대도 연행자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병풍마저 없앴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소리꾼은 한 명이지만 고수는 3명이 나왔다. 1부 이진희(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악장), 2부 윤승환(국립부산국악원 정단원), 3부 강정용(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수석)이 맡았다. 고수는 단순히 소리꾼의 노래 반주를 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소리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을 보완했다. 또 시의적절하게 “얼씨구” “잘한다” “좋~다” 등의 추임새도 넣고, 청중의 반응을 유도하는 등 소리판의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3인 3색의 고수였다.

객석도 이에 지지 않았다. 창자(唱者)만 분별심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청중도 점점 무대에 동화됐다. 고수마냥 “얼쑤~, 기가 막히게 잘허요” 등의 추임새를 끊임없이 넣으면서 물개박수를 쳤다. 해설자도 틈틈이 강조했다. "여러분(청중)도 작정을 하고 들어야 하는 게 판소리 완창입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꼭 완주 부탁드립니다.”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진원 소리꾼.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진원 소리꾼.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공연은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났다. 뒤로 갈수록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다 아는 ‘춘향가’ 스토리지만 생각보다 재미도 있었다. 해설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젊은 소리꾼이다 보니 소리를 거뜬거뜬 가져가 시간이 줄어들었고, 여창이다 보니 남창보다는 섬세한 면이 관객들에게 세세하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1부 공연을 마친 뒤 객석의 3분의 1가량이 비었다. 2부를 마친 뒤에는 1부 때보다는 적게 자리를 떴지만 또 줄었다. 관객 중에는 젊은 커플도 있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도 있었다. 강성태 수영구청장은 문화관광과장, 행정문화국장 등 7명과의 구청 직원과 함께 마지막까지 관람하는 열의를 나타냈다.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진원 소리꾼이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진원 소리꾼이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마지막까지 객석을 지킨 청중을 향해 해설자가 말했다. “끝까지 다 들으신 분은 ‘귀명창’임을 증명합니다!” 신진원 소리꾼도 “정진하는 소리꾼이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박성희(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 명창이 해 준 말이 생각났다. “판소리 완창은 소리꾼과 객석의 교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춘향가’처럼 아주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판소리 완창은 소리꾼 못지않게 관객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소리꾼도 아닌 일개 관객으로 참여한 기자 역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던 거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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