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영검한 득녀 바위나 득녀불은 없나요?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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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스포츠라이프부 차장

여행지를 다니면서 치성을 올리면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바위와 불상을 자주 본다. 경남 밀양 만어사 미륵바위, 부산 기장군 해동용궁사 득남불, 경남 산청 동의보감촌 귀감석…. 과거 우리 사회를 관통했던 남아 선호 사상을 마주하는 순간들이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득녀 바위나 득녀불은 찾아볼 수 없는데 말이다.

1990대 초 방영됐던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이 있다. 가난한 시골집 7대 독자 귀남이와 쌍둥이 딸 후남이의 삶을 그렸다. 대를 잇고 입신양명하도록 지극한 보살핌을 받는 아들, 집안일을 도맡고 교육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딸의 얘기는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의 얘기였다. 어쩌면 다음 세대인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던 얘기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K장녀’라는 신조어가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책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논란 속에 흥행한 것도 우리 속에 잔존하고 있던 남아 선호 사상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이러한 사회적 통념이 많이 희미해진 듯하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남녀 출생 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104.7로 통계 집계(1990년도) 이래 최저치였다. 1990년만 해도 116.5명이었던 출생 성비가 점차 줄어 2007년 자연 출생 성비 수준인 106.2명으로 떨어진 이후 더욱 내려간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겠다는 20~30대들은 그 하나가 딸이었으면 하고 많이들 바란다. ‘딸 둘은 금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이라는 시쳇말은 여전히 통용된다. 아들 둘 부모가 셋집을 구하다 “아들 둘이라서 세를 줄 수 없다”며 문전박대를 당한 사례나, 집을 구하는 지인에게 “아들이 있는 집은 층간 소음이 심하다”며 바로 위층 문 앞에 자전거나 킥보드가 있는지 미리 확인해 보라는 팁을 공유하는 사례도 심심찮다.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부모는 “아이고~ 엄마 아빠 힘들겠다” “엄마한텐 딸이 있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여아 선호는 설문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2년 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자녀를 둘 경우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32%였고 ‘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57%였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식 약화, 아들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치관 약화, 아들과 딸의 양육 강도 차이, 딸과 부모의 정서적 교감, 아들에 대한 징병 문제와 결혼 시 경제적 지원 부담 등이 이유로 꼽혔다.

검색어 통계 사이트 ‘네이버 데이터랩’에 남아 선호 관련 키워드인 ‘아들 낳는 (방)법’ ‘아들 낳기’와 여아 선호 키워드인 ‘딸 낳는 (방)법’ ‘딸 낳기’를 입력해 상대적인 검색량 수치를 기간별로 비교해 봤더니, 2018년부터 여아 선호 관련 키워드의 검색량이 앞섰고 그 이후로는 격차가 더욱 커졌다.

득남 바위나 득남불을 찾는 발길은 크게 줄었고, 득녀 바위나 득녀불이 있다면 인기가 있을 법한 시대가 됐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동용궁사를 찾은 외국인 3명이 득남불 앞에서 ‘득남불을 만지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만지기를 강하게 거부해 스튜디오가 웃음바다가 됐다. 저출생과 함께 여아 선호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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