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알 권리' 침해, 피의자만 감싸고 도는 묻지마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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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상처에 보복 두려움까지 감당
피해자 고통·불안 덜어 줄 대책 시급

묻지마 폭행 피해자의 고통과 공포를 덜어 주기 위해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사진은 지난해 5월 발생한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머리와 다리 등에 심각한 상해를 입고 입원해 있는 모습. 피해자 측 제공 묻지마 폭행 피해자의 고통과 공포를 덜어 주기 위해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사진은 지난해 5월 발생한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머리와 다리 등에 심각한 상해를 입고 입원해 있는 모습. 피해자 측 제공

묻지마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 신상 정보는 물론이고 수사와 관련한 사항들을 알지 못한 채 불안에 떨고 있다. 심지어 가해자가 보복을 하겠다며 큰소리치고 피해자는 언제 당할지 모를 보복 범죄의 공포와 두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까지 벌어진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물론이고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조차 피해자는 제삼자로 취급당하고 ‘알 권리’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오히려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가해자는 감싼다. 이 때문에 이미 범죄로 일상의 자유와 인격권을 짓밟힌 피해자는 2차 가해의 두려움 속에 답답함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5월 22일 서면에서 발생한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박민지(28·가명) 씨는 1년간 생업을 뒤로한 채 사건의 실체를 알기 위해 매달려야 했다. 묻지마 폭행 충격으로 ‘해리성 기억상실장애’를 겪은 피해자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했지만 수사기관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어떤 정보도 줄 수 없다는 거였다. 결국 박 씨는 민사소송을 통해 CCTV 영상을 확보하고 성범죄 정황 등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가해자 손에 들어가 보복 위협까지 당하고 있다. 지난 18일 발생한 초량동 노래주점 묻지마 폭행 사건의 피해자 김연정(66·가명) 씨도 충격으로 당시를 기억하지도 못한 채 언제 닥칠지 모를 보복 두려움에 22년간 운영해 온 주점 문도 닫아야 할 처지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깜깜이 상태에서 이중의 고통을 당하는 것은 현행 형사소송절차가 검사와 피의자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들 묻지마 폭행 피해자들은 수사 단계에서 명확한 죄목이 특정된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선변호사 선임 등 피해자 지원마저 받지 못 한다. 성범죄 등 특정 죄목에 한해서만 피해자 임시 조치나 응급조치가 가능해 현행 피해자 지원 절차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서면 돌려차기 사건만 해도 피해자가 외로운 싸움을 벌인 끝에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성폭행 가능성에 대한 심문이 진행 중이다.

우리 사법 체계의 전범이 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피해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가해자의 수감 상태는 물론이고 출소 예정일 등 세세한 정보까지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 알려 준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당연한 조치로 여겨지는데 우리 법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독일이나 일본은 흉악 범죄에 한해 피해자나 유족이 직접 심문도 하고 양형 의견까지 제시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국내에서도 피해자 알 권리를 강화하는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2년째 국회 계류 중이다.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루속히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피해자는 고통 속에 내몰면서 가해자는 감싸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당장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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