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정립·공식 통계도 없는 ‘묻지 마 범죄’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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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작년 ‘이상동기 범죄’로 뒤늦게 규정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임서 배제되기도

경찰. 연합뉴스 경찰. 연합뉴스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부산 노래주점 폭행’ 사건은 모두 이른바 ‘묻지 마 범죄’로 ‘이상동기 범죄’에 속한다. 이상동기 범죄는 명확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아 관련 통계가 부족하고, 피해자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상동기 범죄는 범행동기가 명확하지 않고 범행 대상에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범죄다. 20여 년 전부터 묻지 마 범죄라는 용어가 사용됐지만, 아직 명확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아 공식 통계도 없는 실정이다. 경찰청이 지난해 초 이른바 묻지 마 범죄로 불리던 사건들을 이상동기 범죄로 부르기로 하고 관련 특별팀을 구성했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이상동기 범죄의 관리 주체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사실상 적극적인 대응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당 범죄 상당수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여서 경찰뿐 아니라 검찰, 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가 관련돼 있다. 유관부서들은 고유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적극적인 대응을 기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상동기 범죄 예방은 치안뿐 아니라 정신보건 영역에서의 관리까지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선임연구원은 “이상동기 범죄의 예방은 분노조절장애, 사회적 적대감 등 드러나는 정신질환적인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며 “정신보건 영역부터 치안까지 포괄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이상동기 범죄의 피해자는 지원의 사각지대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국선변호사 선임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재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성폭력, 장애인 학대, 인신매매 사건 피해자만 선임할 수 있다. 정황상 성범죄 목적이 충분히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수사의 한계 등으로 성범죄 혐의를 확정 짓지 못하면 이상동기 범죄 피해자는 국선변호사 선임 기회를 얻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죄목의 테두리를 넘어 포괄적인 피해자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성범죄나 파트너 폭력의 테두리 안에서는 피해자에게 임시조치나 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죄목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피해자가 법률 조력 등의 보호를 받기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라며 “현실적인 자원의 한계로 모든 피해자 지원이 불가능하다면 각 사건의 죄목을 정확하고 빠르게 가려 가능한 한 피해자 지원 조치를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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