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역 소멸'은 없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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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인구 줄어도 지역은 사라지지 않아
‘주민등록’ 인구 이젠 효용성 떨어져
최첨단 시대에 맞는 인구정책 필요

인구가 가파르게 줄어 ‘지역 소멸’이 우려된다는 기사가 났다. 초등학생 아들이 깜짝 놀란다. 지역이 어떻게 없어지냐고?

공상과학 영화에서 행성이 폭발하는 장면을 봤거나, 과학책에서 수명을 다한 별이 완전히 수축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초등생 입장에서는 지구에 있는 마을 하나가 소멸된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 말이 맞다. 실제 지역이 소멸되려면 지진이 나서 땅이 내려앉거나, 상상도 못할 홍수로 물 밑에 가라앉아야 한다. 극단적 인구 감소를 지역소멸로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서 행정적·법률적으로는 ‘소멸 지역’이 아닌 ‘인구 감소 지역’이라는 용어를 쓴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시행령 제2조 3항은 “광역시, 특별자치시 및 시·군·구 중에서 65세 이상 고령인구, 14세 이하 유소년인구 또는 생산가능인구의 수, 인구감소율, 출생률, 인구감소의 지속성, 인구의 이동 추이 및 재정여건 등을 고려하여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행정안전부장관이 지정·고시하는 지역”을 ‘인구 감소 지역’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지역 소멸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위기의식을 느끼는 지자체들의 ‘벼랑 끝 전술’로도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지역이 소멸된다고 울어야 중앙정부나 상급 지자체로부터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만이라도 제발 떠나지 말라는 절규로도 들린다. ‘꾀병’이라고 폄하하진 않겠지만 과장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지역소멸이라는 표현이 과연 지역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까?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인구이동특성을 고려해 개발한 ‘K-지방소멸지수’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59곳이 소멸위기지역이다. 부산에는 영도와 서구가 해당된다. 지역 소멸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일본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의 ‘지역소멸지수’를 기준으로 따지면 우리나라 기초 지자체의 절반이 넘는 118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소멸이 예상되는 지역이 이렇게 많다. ‘소멸’이 주는 심각성보다는 ‘소멸이 별 것 아니다’는 무신경만 남는다. 정부 입장에서도 사라지기 전에 살려야 할 지역이 너무 많다. 곳곳에서 ‘소멸된다’고 아우성인데 어느 지역에 인프라와 재정을 투입해야 할지 정책수립 단계에서부터 혼선이 생긴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해당 지역 인구 감소를 앞당길 수도 있다. 누가 소멸이 예정된 지역에 이사오려 하겠는가. 살고 있던 사람들조차 빠져나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몇 년 전부터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면서 지방대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랬더니 수도권 대학을 선호하고 지방대를 외면하는 현상이 오히려 심해졌다. 폐교 가능성이 있는 지방대에 가지 않듯이, 소멸이 예상되는 지역에 전입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실제로 지역이 소멸될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그 지역의 땅과 건물과 논밭이 어디로 가겠는가. 설령 전입이나 출생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살던 사람들까지 모두 전출해 인구가 0명이 되더라도 지도 상에 지역은 남아있다. 그렇다고 무인도나 사막처럼 버려지지도 않는다.

왜냐고? 인류의 삶과 행동과 사고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구는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이제는 교통과 통신이 최첨단으로 발달한 신 모바일 시대다. 직장과 주거가 다른 것은 물론 정주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해운대에 주소를 두고 영도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8시쯤 출근해서 밤 10시가 돼야 문을 닫는다고 가정하면 24시간 가운데 영도에 14시간 정도 머물고, 출퇴근에 1시간이 소요되고, 해운대에는 9시간 정도 있을 뿐이다. 주민등록상 인구가 무의미해지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 입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생활인구’라는 개념으로 주민등록 인구를 대체할 수 있다. 해당 지역에 있지 않아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이른바 ‘관계인구’라는 개념도 등장한다.(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 개정안, 의안번호 2121104) 생활인구나 관계인구의 저변이 넓어지면 주민등록 인구는 감소하더라도 더 활기찬 지역이 된다.

그렇게 하다보면 장기적으로는 주민등록 인구의 유입으로도 연결된다. 더이상 ‘지역이 소멸된다’며 울상짓지 말자.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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