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조용한 강수연 1주기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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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7일은 ‘원조 월드 스타’로 불리고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을 지낸 영화배우 고 강수연(1966~2022) 씨의 1주기였다. 이날을 포함한 지난 6~9일 서울에서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이라는 1주기 추모전이 성황리에 열렸다. 영화인들이 뜻을 모아 한국 영화를 빛낸 고인의 업적과 위상을 국민과 함께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 게다.

매일 한국영상자료원과 성수동 메가박스에서 고인의 출연작이 상영돼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녀들의 저녁식사’ ‘달빛 길어올리기’ ‘씨받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아제아제 바라아제’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송어’ ‘주리’ ‘정이’ 등이다. 상영작 감독과 배우가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관객과 대화하는 토크쇼도 진행됐다. 또 고인의 캐리커처를 담은 기념 배지 2종이 제작됐다. 친한 영화계 동료와 선·후배가 필진으로 참여한 추모집인 포토아트북 〈강수연〉이 곧 발간될 예정이다.

이와 달리 부산에선 아무런 추모 움직임이 없어 아쉽다. 고인이 부산과 오랜 인연을 갖고 BIFF 발전에 누구보다 기여한 사실을 고려하면 BIFF와 부산 영화계의 엄청난 푸대접인 셈이다. 그가 1996년 BIFF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과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BIFF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하는 데 공헌했다는 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특히 BIFF가 부산시와 예산 지원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위기에 처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아 구원투수로 헌신해 정상화로 이끌었다. 2016년 제21회 BIFF 개막식 때 다른 배우들과 화려한 드레스 대신에 검은 옷을 입고 태풍 ‘차바’로 큰 피해를 입은 부산·울산·경남 주민들의 아픔을 같이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고인을 외면한 듯 조용한 부산 분위기를 의아해하는 시민이 적지 않다.

공교롭게도 9일 BIFF는 임시총회를 열어 별도의 운영위원장을 선임하고 기존 집행위원장과 투톱 체제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조직 강화나 권력 다툼으로 엇갈린다. 이번에 시기를 놓쳤지만, BIFF 내부 사정이 어떻든 올 10월 28회 BIFF에서만큼은 특별한 강수연 추모전을 기획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의 속어)가 없냐.” 그가 연기에 대한 열정과 긍지를 강조해 남긴 말은 2030월드엑스포 유치에 도전 중인 부산과 삶이 고달픈 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하늘의 별’이 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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