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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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윤 대통령 취임 후 줄곧 경제 강조
국정 운영에서의 성과는 아쉬워

경제성장률 전망치 줄줄이 하락
수출·내수 침체에 외부 악재 심화

외교·안보에 들이는 공 못지않게
경제에도 국정 최우선 가치 둬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 경제 장관회의 겸 수출 투자 대책 회의에 참석해 최근 우리나라의 수출 상황과 전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 경제 장관회의 겸 수출 투자 대책 회의에 참석해 최근 우리나라의 수출 상황과 전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에 대해 “민생 안정을 위한 경제지표를 찾아볼 수 없고, 경제 정책이라는 게 그냥 무(無)의 상태”라고 비판했다. 지난 16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서 그리 말했다. 그래도 한때는 “별의 순간” 운운하며 윤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우던 김 전 위원장인데, 왜 이렇게 모진 말을 했을까.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곰곰 돌아보면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싶다.

김 전 위원장의 비판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꽤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1년간 연설문 190건을 분석했더니, ‘경제’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557번) 언급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한 경제는 그의 지난 국정 운영에서 얼마나 치중됐고 또 성과를 거뒀을까.

아쉽게도 경제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박한 편이다. 윤석열 정부에게서 경제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한·일 관계 정상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인데, 수출 등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실제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각종 지표에서 위기 징후가 포착된다는 점이 문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1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전망했다. 지난 2월 1.8%를 제시했는데, 3개월 만에 0.3% 포인트 낮췄다. 그전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는 1.6%였다. 여하튼 통계 작성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 오일쇼크의 1980년,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에나 볼 수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의 급격한 감소세가 지목된다. 수출은 지난해부터 계속 줄고 있고 올해 들어서도 추세는 바뀔 조짐이 없다. 이달 들어서만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1%나 줄었다. 이 탓에 무역적자는 1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수출이 안 되면 내수라도 살아나야 하는데 그마저도 비관적이다. 코로나19 이후 살아나는 듯했던 소비는 작년 말 이후 계속 내리막이다. 투자나 고용 등 다른 내수 전망도 어둡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물가는 고공행진이고 금리는 내릴 줄을 모른다. 수출도 안 되고 내수도 살아나지 않으니 경기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외부 환경에도 악재만 더해질 뿐이다.

정부는 국내 경기가 올해 하반기에는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하반기에는 더 힘들어질 수 있다며 우리 경제가 전에 없는 혹한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국민 살림살이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전기 요금, 가스 요금, 식자재 요금, 교통비 등 시쳇말로 월급 빼고는 안 오르는 게 없다. 서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전기와 가스 요금의 경우 올해 1분기에만 1년 전보다 30.5%나 올랐다. 이는 1988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더 답답한 건 이런 사태가 지난해 이미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국외 여건에 따른 형편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할 따름이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정부가 경제에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으로 비친다. 서민들은 아우성일 수밖에 없다.

봇물처럼 이어지는 개인회생 신청이 좋은 예다. 개인회생은 경제적 파탄으로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가 최저생계비라도 확보할 수 있게 빚을 줄여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행위다. 개인회생 신청이 증가한다는 건 그만큼 궁지에 몰린 서민이 많다는 의미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법원에 신청된 개인회생은 1만 1200여 건이다. 월간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1만 건을 웃돈 것은 2014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같은 이유로 자영업자도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19조 8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외교·안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로 인해 한·미 동맹의 틀에 일본까지 가세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된다. 이제는 경제, 특히 서민 경제도 돌아봐야 한다. 이는 외교·안보보다 더 근원적이고 필수적인 국정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경영의 으뜸은 경제라는 사실이 강조됐다. 경제는 곧 민생이고 민생을 살리는 일이 국정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나라의 근본은 국민(백성)이고, 먹는 일은 국민이 하늘로 여기는 바다”(民惟邦本 食爲民天)라고 했다. 다른 모든 가치에 앞서는 게 먹는 것, 곧 경제라는 뜻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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