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뒤집고 비트는 혁명적인 건축을 보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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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유현준

유럽·북미·아시아 30개 건축 소개

시티그룹 센터, 공중권 구매
건물 층수 높여 뉴욕 랜드마크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긴 벽으로 연결 관람자 편의 배려
독일 국회의사당 돔 전망대
국회의원 감시 통쾌한 디자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 모습. 전시 공간이 빙빙 돌면서 내려가는 경사로이기 때문에 앞으로 갈 공간도 미리 볼 수 있고, 조금 전에 지나쳐 온 공간도 되돌아볼 수 있다. 을유문화사 제공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 모습. 전시 공간이 빙빙 돌면서 내려가는 경사로이기 때문에 앞으로 갈 공간도 미리 볼 수 있고, 조금 전에 지나쳐 온 공간도 되돌아볼 수 있다. 을유문화사 제공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 흰색 재료로 마감된 리본 같은 벽체가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을유문화사 제공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 흰색 재료로 마감된 리본 같은 벽체가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을유문화사 제공
독일 국회의사당 돔 안의 경사로에서는 베를린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을유문화사 제공 독일 국회의사당 돔 안의 경사로에서는 베를린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을유문화사 제공

건축물은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물질이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이다. 건축물에는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관점, 물질을 다루는 기술 수준, 사회 경제 시스템, 인간에 대한 이해, 꿈꾸는 이상향, 생존을 위한 몸부림 등이 투영돼 있다. 건축은 이렇듯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은 건축가 유현준이 감명받거나 영감을 얻은 30개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이 건축물은 유럽, 북미, 아시아에 있는 것들이다. 이 작품들을 설계한 20명의 건축가는 수백 년 된 전통을 뒤집거나 비트는 혁명적인 생각으로 건축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저자는 “이 건축물들을 통해 건축 디자인이 무엇인지 배웠다. 큰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새로운 생각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라고 전한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미국 뉴욕의 ‘시티그룹 센터’가 가장 훌륭한 오피스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건물 하나의 디자인에 사회적 이해, 경제적 혜안, 타협과 중재 능력, 창의적 생각, 구조 기술력, 법규의 기발한 활용, 친환경 사고 등 많은 장점이 종합돼 있기 때문이다.

첨두 디자인이 특이한 ‘시티그룹 센터’는 주변 건물보다 20층 가까이 높다. 높은 건물을 짓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땅의 크기가 작아서 지을 수 있는 연면적이 작아서일 수도 있고, 대지의 높이 제한 때문일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개발 회사는 주변의 땅을 많이 매수해서 규모가 큰 건물을 짓고 싶어 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오래된 작은 교회였다. 이 교회는 땅을 팔고 떠나기를 거부했다. 시티그룹 센터는 이 교회로부터 ‘공중권’을 구매해서 건물의 높이를 10층 정도 더 올릴 수 있었다.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는 권리다. 교회의 지붕 위로 시티그룹 센터를 지으면서 과감하게 12층 높이까지 비우고 13층부터 건물을 배치했다. 그렇게 비워진 땅은 오롯이 시민을 위한 광장으로 사용된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면 광장과 교회만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시민에게 개방된 공지 덕분에 개발 회사는 뉴욕시로부터 추가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그렇게 ‘시티그룹 센터’를 10층 정도 추가로 높게 지을 수 있었고, 주변 건물보다 훨씬 더 높아지면서 뉴욕의 개성적인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랜드마크가 됐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술관이 방일 필요는 없다’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 미술관은 전체적으로 흰색 재료로 마감된 리본 같은 벽체가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뱅뱅 돌려서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 같다.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벽이 필요하다는 미술관의 기본에 충실한 건물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네모난 방의 벽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기다란 벽을 만들었다. 관람자는 그 벽만 계속 따라가면서 보면 된다. 건축가는 430m나 되는 기다란 벽을 연속되게 만들기 위해 경사로를 따라 둥그렇게 위로 말아 올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네모난 방을 만들 경우 생겨나는 각진 모서리 없이 연속된 벽체를 만들 수 있었다. 빙빙 돌아 올라가는 경사로의 가운데는 여섯 층이 뻥 뚫린 빈 공간을 만들었다. 이 미술관 로비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경사로가 돌아 올라가면서 만들어 낸 전시 공간이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온다. 관람 전에 아래와 위에서 전체 공간을 파악하고 나서 천천히 그림을 보면서 내려오거나 올라갈 수 있다. 전시 공간이 빙빙 돌면서 내려가는 경사로이기 때문에 앞으로 갈 공간도 미리 볼 수 있고, 조금 전에 지나쳐 온 공간도 되돌아볼 수 있다. 관람객에겐 참으로 친절한 미술관이다.

독일 국회의사당의 구조는 ‘국회의원은 국민보다 아랫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독일 국회의사당은 원래 1898년에 파울 발로트가 디자인한 의사당 건물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의 공격으로 돔이 앙상한 구조만 남을 정도로 대파되었다. 독일은 1990년 통일되고 나서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기고 하원의원을 위한 독일 국회의사당을 리모델링하는 국제 공모전을 주최했다. 그 공모전에서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당선돼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포스터는 부서진 건축물을 돔이 있는 현대적인 의사당으로 개조했다.

돔은 예부터 교회나 왕 같은 종교적 혹은 정치적 권력을 상징하기 위한 건축적 요소였다. 이유는 돔 건축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당대 사회의 최고 권력자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건축 공간이 돔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 포스터는 돔을 과거 형태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절대 권력의 상징인 돔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고 그 안에 경사로를 넣어서 베를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만들었다. 독일 국회의사당의 돔을 전망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곳에 올라가는 시민들에게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보는 시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전망대에 있는 사람들은 도시만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에 있는 국회 회의장도 내려다볼 수 있다. 여기서는 국회의원들이 졸거나 허튼짓하기 정말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보여 주는 통쾌한 건축 디자인이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유현준 지음/을유문화사/492쪽/1만 9500원.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표지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표지

사진 중앙에서 오른쪽에 경사진 첨두의 흰색 건물이 뉴욕 맨해튼에 있는 ‘시티그룹 센터’다. 을유문화사 제공 사진 중앙에서 오른쪽에 경사진 첨두의 흰색 건물이 뉴욕 맨해튼에 있는 ‘시티그룹 센터’다. 을유문화사 제공

뉴욕의 ‘시티그룹 센터’는 과감하게 12층 높이까지 비우고 13층부터 건물을 배치했다. 그렇게 비워진 땅은 오롯이 시민을 위한 광장으로 사용된다. 을유문화사 제공 뉴욕의 ‘시티그룹 센터’는 과감하게 12층 높이까지 비우고 13층부터 건물을 배치했다. 그렇게 비워진 땅은 오롯이 시민을 위한 광장으로 사용된다. 을유문화사 제공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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