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공연예술마켓은 ‘부산판 에든버러 축제’로 성장할 수 있을까 [2023 BPAM]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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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참석

윌리엄 버뎃-쿠츠 에든버러 프린지 예술감독
"프린지 통해 수많은 기회 얻고 성장"
코로나 이전 63개국 3841 작품 공연
부산도 똑같은 행사 지양, 독특함 있어야

질 도레 캐나다 퀘벡 시나르 비엔날레 총감독
시나르 발전 계기는 1967년 엑스포
"국제 네트워크 합류 최소 3년은 필요"
"레지던시·공동 창작 등 새 소통 고민"

지난 15일 폐막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아트마켓 부스 전시장 앞에 전시된 참여 단체들의 작품 포스터.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제공 지난 15일 폐막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아트마켓 부스 전시장 앞에 전시된 참여 단체들의 작품 포스터.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제공

부산국제영화제(BIFF)나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G-STAR)’ 명성을 능가하는 ‘부산판 에든버러 축제’가 탄생할 수 있을까. 올가을 부산에서 처음으로 개최할 ‘부산공연예술마켓(BPAM)’은 미미한 시작에 불과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에든버러를 꿈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KoCACA·회장 이승정)가 16년을 개최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의 내년 장소 변경을 가시화하면서 부산시에 유치 의사를 공식 타진한 것과 맞물려 아트마켓을 포함한 공연예술 축제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만약 해비치아트페스티벌 부산 유치를 통해 해외 네트워크 등 공연예술 페스티벌 운영 전반의 노하우까지 품을 수 있다면 향후 부산국제아트센터·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과 더불어 부산이 공연예술 도시로서 새로운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마저 나온다.

지난 13~15일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을 찾은 세계 최대 공연예술 마켓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 ‘시나르(Cinars) 비엔날레’(이하 시나르)의 질 도레(60) 총감독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40여 년간 ‘어셈블리 프린지 페스티벌’을 이끈 윌리엄 버뎃-쿠츠(68) 예술감독을 각각 만나 아트마켓을 포함한 예술 축제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5일 폐막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영국 에든버러 어셈블리 홀 극장장이자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윌리엄 버뎃-쿠츠. 지난 15일 폐막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영국 에든버러 어셈블리 홀 극장장이자 페스티벌 예술감독인 윌리엄 버뎃-쿠츠.

부산만 보여줄 수 있는 것 찾아야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 축제를 개최하는 에든버러에서 40여 년간 ‘어셈블리 프린지 페스티벌’을 이끈 윌리엄 버뎃-쿠츠 예술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IF)’ 부대행사로 시작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산증인이다. 어셈블리 페스티벌은 ‘에든버러 프린지의 심장’으로 평가받으며, 쿠츠 감독이 1979년 예술단체 소속으로 2년간 프린지에 참가한 후, 1981년부터 운영 중인 프로그램이다.

“코로나로 페스티벌이 잠깐 중단된 적은 있지만, 40여 년을 이어 왔습니다. 프린지의 장점이라면 누구나 원하면 공연을 올릴 수가 있다는 겁니다. 프린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기회의 땅’ 같은 거죠. 누군가가 내 공연의 라이센스를 사 가거나 함께 만들자고 할 수 있고, 다른 작품에 출연해 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니까요.” 쿠츠 감독 역시 “프린지를 통해 수많은 기회를 얻었고, 또한 성장해 왔다”고 자부했다.

세계 최대의 에든버러 축제는 1947년 시작된 이래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까지 매년 전 세계 2만 50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4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한 인터내셔널(국제) 페스티벌로 개최돼 연극, 마임, 오페라, 무용,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됐다. EIF 외에도 프린지, 영화제, 밀리터리 타투 등이 개최돼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이 중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초청받지 못한 작은 단체들은 거리와 골목, 교회, 광장, 다리 등 주변(프린지·fringe)에서 자유롭게 자체 공연을 했고, 이후 ‘프린지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프린지 페스티벌을 통해 소개된 세계 각국의 독특하고 참신한 작품들은 공연예술 관계자와 창작자, 배우는 물론 관객과 언론의 이목을 끌면서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이상으로 주목받았다. 2019년 에든버러 프린지는 323개 공연장에서 63개국이 참가한 3841개 작품으로 총 5만 9600회 공연을 올렸고, 300만 장 이상의 티켓을 판매했다. 한국의 대표적 넌버벌 퍼포먼스인 ‘난타’와 ‘점프’ 역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크게 주목받은 것을 계기로 해외에 나가 성공했다.

물론 프린지 페스티벌이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갈 수 있고, 잘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꿈의 무대’지만 항공료와 체재비, 극장 대관료 등을 고려하면 쉽게 참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에든버러는 여전히 ‘기회’에 목말라하는 전 세계 공연예술인이 찾고 있다. 그들에게 전하는 쿠츠의 조언이다

“에든버러에서는 정말 많은 새로운 시도가 이뤄집니다. 혹시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는 분들은 꼭 에든버러로 오십시오. 단, 처음 올 때는 작품을 들고 오지 말고, 먼저 구경을 하면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둘러보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것이 어디에 맞을지 고민하고, 내가 여기서 뭘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좋겠습니다.”

올해 첫 시도하는 부산공연마켓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부산도 마찬가지겠지만, 큐레이팅 되는 페스티벌이 많은데 이런 데를 가 보면 항상 오는 팀들이 오고, 봤던 팀들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행사만의 오리지널한 것, 이 쇼만의 독특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여기에 오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똑같은 행사를 하면 굳이 여기에 올 이유가 없죠!”

한편 제76회를 맞는 올해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한·영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 특집을 마련한다. 한국 공연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포커스 온 코리아(Focus on Korea)’ 프로그램을 통해 오는 8월 8~17일 한국의 5개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초청 팀은 국립창극단, KBS 교향악단과 ‘첼로 영재’ 한재민,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 노부스 콰르텟이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의 한국 특집 프로그램은 2013년 백남준 전시 등 이후 10년 만이라고 주영한국문화원은 밝혔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과 동시에 개최되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8월 4~28일)에도 ‘제7회 코리안 시즌’이 마련된다. 글로벌 문화기업 에이투비즈에 따르면 올해 코리안 시즌에 초청된 한국 작품은 5편이다. 넌버벌 마스크 연극 ‘더 메신저(창작집단 거기가면)’, 드림팝 국악 ‘일월당’, 개그 아이돌 ‘코쿤’, 연극 ‘하녀들’, 신체극 ‘헬로, 더 헬:오셀로(Hello, the Hell: Othello)’를 라인업으로 선정했다.


지난 15일 폐막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캐나다 국제공연예술컨퍼런스(CINARS, 시나르) 비엔날레 대표 겸 총감독 질 도레. 지난 15일 폐막한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캐나다 국제공연예술컨퍼런스(CINARS, 시나르) 비엔날레 대표 겸 총감독 질 도레.

전문가 에이전트·네트워크 활용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엑스포 67’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세계박람회 이후 세계 진출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정부도 퀘벡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고, 많은 아티스트가 양성돼 기업 후원으로 월드투어를 하게 된 거죠. 음악을 시작으로 그다음은 무용, 연극 관련 회사가 유럽 투어를 했고, 다양한 공연예술을 알리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퀘벡에서 짝수 해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공연예술 마켓 시나르의 질 도레 총감독은 시나르가 창설된 것은 1984년이지만 1967년 엑스포 개최가 결정적인 계기였음을 언급했다. 그는 또 “한국 공연이 세계로 나가길 원한다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아티스트가 국제적 인적 네트워크에 합류하려면 최소 3년이 필요하고 안정적으로 그 일부가 되려면 5년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연의 칸’으로도 불리는 시나르는 전 세계 아트마켓 모델의 시초로 1984년 창설돼 지난해 20회를 치렀다. 세계 50여 국에서 1500여 명의 프로그래머, 극단, 에이전트, 각국 문화예술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170여 편의 공연 쇼케이스를 진행한다. 전 세계에 있는 소수정예의 우수 작품들만 초청하고 있다. 해외 진출 기회를 모색하는 한국 공연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부산 단체로는 2018년 그루잠 프로덕션의 매직컬 미스터리 퍼포먼스 ‘스냅(SNAP)’이 공식 초청된 바 있다. 내년 21회 비엔날레 행사는 11월 개최 예정이다.

시나르에는 두 개의 부서가 있다. 하나는 비엔날레 행사를 담당하고, 다른 하나는 국제사업을 진행하는 부서다. 국제사업 부서에서 주로 해외 시장 진출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도레 총감독은 이번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에도 퀘벡의 3개 업체와 함께 왔다고 했다. 2007년 처음 한국에 온 그는 2011년 이후 코로나 시기를 빼면 거의 매년 서울공연예술마켓(PAMS) 즈음해 한국을 찾았다.

도레 총감독은 에이전시 활동과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에이전트의 중요성은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전문가입니다. 에이전트는 공연 홍보를 전담하고, 공연 기획자는 관객에게 집중합니다. 국내 네트워크 못지않게 이스파(ISPA·국제공연예술협회), 이파카(IFACCA·국제예술문화협회연맹) 등 국제 네트워크, 유니마(UNIMA·국제꼭두극연맹)나 탄츠 메세 같은 학술 네트워크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서 신뢰 관계를 쌓아 가야 합니다.”

올가을 처음 공연마켓을 시도하는 부산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정원을 가꾸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식물이 땅에서 갑자기 확 올라오는 게 아니잖아요. 잡초도 있을 수 있고요. 즉 다시 말해 급하게 가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주최 측은 예술가와 예술단체가 해외 진출을 잘할 수 있는 연결고리, 사람을 찾아주는 역할입니다. 우리 시장과 해외 시장은 분명히 다른데 잘 모르고 덤비면 힘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언어 문제도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새로운 문화대사를 고민하게 됐는데 단순한 투어를 진행하기보다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나 전문 워크숍, 공동 창작이나 공동 제작 등을 통해 새롭게 소통하는 ‘순환’의 방법을 찾았다”면서 “지역에서 생활하지만 글로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제주/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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