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금지곡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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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눈물 젖은 두만강’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금지곡 1호였다. 조선총독부는 망국의 서러움을 풍자하고, 조선의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음악에 재갈을 물렸다. 일제는 우리 노랫말과 레코드의 발매까지 막고, 일본 군가와 국민가요만 부르게 했다. 금지곡을 부른 사람들은 경찰서로 연행해 형사처분했다.

건국 이후 군사정권 시절에도 노래에 대한 통제는 극심했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송창식의 ‘고래사냥’, 양희은의 ‘아침이슬’ 등 188곡이 저속·퇴폐 등의 이유로 금지됐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가사로 유명한 ‘아침이슬’은 1975년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9호에 의해 금지곡이 된 이후 1987년 해금되기까지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꿋꿋이 이 노래를 불렀고,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됐다.

이처럼 금지곡은 폭력적인 권력이 날뛰던 시대의 어두운 산물이다.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지배 세력은 민중의 애환, 저항적 이데올로기를 담은 노래에 두려움을 느낀다. 시대의 정서를 담은 노래는 어떤 예술 장르보다 표현의 자유와 깊은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은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서로를 공감하고, 정서를 공유한다.

최근 홍콩 정부가 2019년 당시 홍콩 반정부 시위대 애창곡인 ‘홍콩에 영광을(Glory to Hongkong)’이란 노래를 연주나 각색까지 금지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고 한다. ‘홍콩의 국가로 잘못 연주되는 일이 반복돼 중국과 홍콩특별행정구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는 이유다. ‘새벽을 깨고/ 우리의 홍콩을 해방시키자/ 홍콩에 영광이 있기를’이란 작가 미상의 이 노래에는 중국 정부의 탄압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홍콩인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금지곡 지정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휩쓰는 역효과까지 빚어지고 있다.

끈질긴 투쟁을 벌였던 홍콩인들을 폭력으로 제압한 중국 공산당도 대중에 잠재된 정서는 무서운 모양이다. 자기에게 거슬리는 노랫말이 들리면 두렵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고 금지곡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권과 권력자가 정상 궤도에서 심하게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금지곡은 언젠가는 해금되고, 노래가 상식이 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중국과 홍콩 정부도 ‘금지곡과 위협으로는 국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더 늦기 전에 깨닫기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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