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K바가지' 유감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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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스포츠라이프부 차장

한 달 전 다녀온 제주 여행에 앞서 지인들에게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 있다. “○○엔 꼭 가 봐라” “○○맛집엔 꼭 들러라”는 좋은 여행 정보는 고사하고 “그 돈이면 일본이나 동남아로 가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이다. 국내 여행 때마다 어제오늘 들었던 핀잔은 아니지만, 여행 비용과 효용을 고려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바가지 논란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인천 소래포구에서는 구입한 꽃게의 다리가 대부분 떨어져 있었다는 소비자의 후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바가지·하자 논란이 불거졌다. 몇몇 지역 축제 현장에서는 감자전과 닭갈비, 어묵의 가격이 턱없이 비싸다는 바가지 논란이 일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상인이 과자 한 봉지에 7만 원을 달라고 한 장면이 방송을 타 질타를 받았고, 유명 가수의 공연과 숙소를 예약한 직장인이 이미 숙소를 예약했음에도 “5만 원을 추가로 내거나, 아니면 예약을 취소해 달라”는 숙소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난 서울 명동에서도 길거리 음식의 바가지 논란이 한창이다. SNS를 통한 소통이 활발해지고,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바가지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편에서는 소비자가 사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느냐는 말이 나온다. 지역 경제가 어렵고 급등한 인건비와 물가 등 복잡한 속사정도 감안해야 한다는 읍소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 신조어로 등장한 ‘K바가지’의 고착화에 대한 우려는 씻을 수 없다.

K바가지는 국민들의 국내 여행 활성화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번 등 돌린 소비자를 다시 붙잡기는 쉽지 않다. 한번 고착화된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SNS를 통해 국내 바가지 논란 관련된 기사와 소비자들의 반응이 빠르게 펴져 나가고 있다. 여행사를 하는 한 지인은 “바가지는 소비자와 관광객의 신뢰를 잃게 하고, 나아가 도시와 국가의 이미지를 훼손한다. 우리 국민들에겐 국내 여행 대신 해외로 발길을 돌리게 만들고, 외국인들에겐 한국 여행을 꺼리게 한다”고 말했다.

장마철이 지나면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다. 학생들은 곧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를 뒤돌아보면, 해외 여행 대신 국내 여행으로 발길을 돌렸던 국민들은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참 많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주변에선 역대급 엔저에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가성비 따지며 동남아 여행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억눌러 왔던 해외 여행에 대한 갈망도 있겠지만, 이들 중엔 최근 잇따르는 바가지 논란에 실망한 이들도 적지 않다.

올해와 내년은 정부가 지정한 ‘한국 방문의 해’다. 특히 정부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통 큰 계획을 세웠다. 한국 방문의 해에 바가지 논란이라니 맥이 빠진다. 올해 1분기 여행수지 적자 규모가 코로나19 펜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이는 하반기까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자동차, 배 팔아서 해외 여행으로 쓰기 바쁘다’는 말이 다시 나와 씁쓸해진다. 지금은 든든한 한류를 배경으로 ‘굴뚝 없는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호기다. K바가지라는 신조어가 “언제 그런 말이 있었냐”는 듯 흔적 없이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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